하나 남은 수학, 지킬 수 있을까요?
원래의 브런치북 취지의 글로 돌아가기 전에, 최근 썼던 수학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고등학생이 된 티라노는 2학기 중간고사를 치렀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학군지에서 학습 무기력에 빠져 시험공부를 거부한 지 1년이 조금 넘었고요. 수학학원만 남기고 모든 공부를 다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2학기 들어서 학교에서조차 수학학원 숙제를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저는 불안과 우울의 늪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늪 가장자리 나뭇가지를 붙잡고 버텨야만 했고요.
사실 중간고사 수학 시험은 두 가지 의미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수학공부를 안 했는데도 1학기때만큼 잘 나오면 어쩌지? 그럼 '뭐야! 안 해도 되네?'라면서 계속 안 할 텐데.
수학을 잠깐 놓았는데 너무 망치면 어쩌지? 그럼 '잠깐 놓았는데 이렇게나 망친다고? 나 안 해! 분명 또 좌절에 빠져 수학마저 무기력에 빠질 텐데.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저 역시 adhd라서 머릿속에 늘 생각이 한가득이라서 걱정도 항상 한가득입니다.
그렇게 중간고사 수학 시험을 보았습니다. (다른 과목은 말 안 하겠습니다.) 다행히 적당히 망쳐서 왔습니다. 이번 시험범위가 직선의 방정식, 집합, 도형이었는데, 직선의 방정식과 집합은 거의 다 맞은 반면, 도형을 많이 틀려서 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저를 보더니 "이번 시험 정말 망쳤어! OO점 맞았어..."랍니다. 제 희망점수 정도를 맞아와서 오히려 반가움이 몰려옵니다.
저는 티라노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틈을 엿보다가 운을 뗍니다.
"엄마가 미친 소리 하나 할까?"
다행히 관심 어린 표정으로 절 쳐다봅니다.
"사실 네가 공부를 안 했는데도 1학기때만큼 맞아올까 봐 정말 걱정했어."
그랬더니 "설마 나 시험 망쳐서 오히려 좋아하는 거야?"랍니다. 제가 실망은커녕 도리어 안도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고는 낯설고 황당해하더니 위안이 되었는지, 신경질적인 태도가 조금씩 사그라듭니다.
그러다 아이 아빠가 퇴근하고 왔습니다. 티라노가 아빠에게는 속내를 말해주곤 해서 아빠 찬스를 써서 마음 읽기를 시도했더니, 덥석 뭅니다.
"사실은 도형이 재미도 없는데 어려워서 이번에 숙제를 하기가 싫었어."랍니다.
사실 이과생들에겐 함수나 미적분이 재미가 있지, 집합, 확률통계 이런 수학들은 참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도형은 재미가 없는데 어렵기까지 하고요. 확실히 티라노가 ADHD라서 지루함과 어려운 과제 해결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구나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남편은 티라노에게 중요한 한마디만 건넵니다.
"어려울수록 더 숙제해야 하는 거야."
제가 이렇게 말했으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을 텐데, 아빠가 말하니 잠자코 진지하게 들었답니다. 아빠와의 관계도 돈독히 다져놓기를 참 잘했다 싶습니다.
그러곤 셋이 번갈아 체스를 두며 화기애애한 틈을 타서 다시 한번 강조하며 "적당히 망쳐서 정말 다행이야! 너무 망치지도, 너무 잘 보지도 않아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설마 나 시험 망쳤다고 지금 좋아하는 거야?"랍니다.
"응! 너 공부 안 했는데도 잘 볼까 봐 엄마 정말 걱정했어. 그러면 계속 안 할 거 아냐. 공부 안 하면 내려간다는 것도 알아야지. 지금까지 공부를 해서 잘 본 거였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티라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학 숙제를 다시 하게 될지, 이렇게 차츰 놓게 될지. 과학으로 공부가 확장이 될지, 그런 날은 영영 안 올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부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차곡차곡 쌓아주고 있고, 꽤 많이 쌓였다는 사실입니다.
인지적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서, 고집이 매우 센 ADHD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정말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믿고 기다려주는 수밖에는 없다는 걸 새삼 또 깨닫습니다. 티라노에게 더 큰 동기가 찾아올 때까지는 뒹굴뒹굴 쉬더라도 조금 믿고 기다려주어보려 합니다. 이 아이는 노는 게 아니라, 쉬면서 충전하고 있는 거니까요.
결과가 어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며 살 것입니다.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