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은 왜 이렇게 자책과 후회의 연속일까요. 아마도 엄마인 저 역시 중증 ADHD라서 그런 가 봅니다. 주의력 문제가 불러오는 터널시야로 보고 싶은 것 이외에는 잘 보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 위주로 판단한 후, 덜컥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곤 하죠. 지나고 보니 티라노 양육 과정에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야. 다른 애들처럼 심화서까지 풀었어야지. 넌 기본서도 다 못 풀었잖아."
열심히 한다고 한 아이에게 동기부여한답시고 한 말이 독화살이 되어 아이 가슴에 꽂혔었지요. 그게 벌써 작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입니다. 어언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겨울 영하 20도의 날씨에도 공원을 달리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슴을 두들기기도 했습니다. 아니, 아이에게 상처 준 말을 내뱉은 제 입을 탓하였지요.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방황하는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 엄마는 꼬박 2년을 울면 지난다고 하더군요. 그럼 전 반년만 더 울면 되는 걸까요? 그런다는 보장만 있으면, 반년 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울 자신이 있는데 말입니다.
학군지 수학학원 최상위반에 들어가지를 말았어야 했을까요? 이게 뇌기능의 문제로 동기부여 자체가 안되고, 실행조차 어려운 ADHD인 아이에게 압박과 부담으로 작용한 걸까요? 참고 또 참다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틈을 타 슬쩍, 수학숙제를 왜 안 하려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냥 귀찮아. 재미가 없어."랍니다.
'귀차니즘과 미루기' ADHD 아이들의 핵심 문제 두 가지입니다. 귀찮은 이유는 동기부여가 안 돼서, 미루는 이유는 실행기능 저하 때문이지요. ADHD 공부를 하도 많이 해서 아주 잘 알지만, 알면서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다가 10월 모의고사를 보았습니다. 수학마저 제대로 안 풀고 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한 하루였나 모릅니다. 게다가 하필 감기가 잔뜩 걸린 채로 갔고요. 하교하고 티라노가 왔습니다. 현관 입구에 던져놓은 가방을 슬쩍 뒤집니다. 역시나 국어, 영어, 사회, 과학, 역사 전부 완전한 백지입니다. 오! 다행히 수학은 풀었습니다. 2학기 들어서 수학숙제마저 잘 안 하게 되면서 1학기때와 달리 수학 채점을 안 해옵니다.
두근두근 몰래 채점합니다. 채점할 과목이 수학뿐이라 채점은 금방입니다. 모의고사 예상 등급컷 발표를 무한 새로고침하면서 기다립니다. 두둥! 다행히 1등급입니다. 지난 9월 모의고사까지는 턱걸이 1등급이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조금 더 올랐습니다.
방에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널브러진 티라노에게 점수가 쓰인 면을 위로 하여 툭! 던지며 한마디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열심히 수학 공부해서 이번에도 잘 봤네! 거봐! 열심히 해놓은 거 쉽게 안없어잖아! 그동안 수고 많았어. 오늘도 열심히 풀어주어서 정말 고맙고!"
듣기 나쁘지 않은지 저를 쓱 쳐다보는데 안도하는 표정입니다.
올해 혹시 모의고사가 또 남았나 찾아봅니다. 휴~ 다행히 이번이 마지막 모의고사입니다. 그래, 올해는 수학은 지킨 걸로 하고 지나가자 싶습니다.
아이는 수학숙제를 아예 안 하고 있습니다. 웃긴 건 그래놓고 수학학원은 또 꾸역꾸역 갑니다. 수업이라도 들으라고, 차로 데려다주고 학원가는 날은 고기도 더 맛있는 부위를 구워주면서 외적 동기부여를 해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이 ADHD 고딩 남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또 혹여 이 예민한 아이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일을 다 그르칠까 봐 늘 노심초사입니다.
최근 몇 년간 집에서라도 환하게 웃게 만들어주자 싶어서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집에서는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입니다. 저희와 관계도 아주 좋고요.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집 말고,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함께 환하게 웃을 그날을 말입니다. 수학만큼은 다시 열심히 하면서 삶의 의욕도 다시 찾게될 날을, 저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