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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돼서야 아이의 ADHD를 발견한 진짜 이유

이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by 그림크림쌤

티라노는 신생아 때부터 남달랐습니다. 모유든 분유든, 5분 이상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러니 잠들어도 30분을 멀다 하고 금세 깨서 울곤 했습니다.


제 아기 때에도 그랬습니다. 저희 엄마는 제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너 3살 때 아무것도 안 먹고 계속 울기만 해서 오죽하면 아빠가 화가 나서 깍두기 국물을 먹였어. 근데 그걸 먹고는 잠잠해졌지 뭐니!"


그래서 티라노가 잘 안 먹고 자주 울 때마다, '나도 그랬는데 내 아기도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티라노는 언어발달 지연이 왔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20개월에 "엄마, 아빠, 맘마"라며 말이 텄던 아이가, 저의 잘못으로 입을 꾹 다문채 30개월, 4살까지 한 번을 열지 않게 되었습니다. 즉, 일종의 실어증이랄까요.


제4살 때에도 그랬습니다. 충청남도 시골에서 포도밭 과수원을 하던 저희 부모님은 과수원을 팔고, 엄마 고향인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1950년대 서울 태생이라 주민등록번호 두 번째 자리가 '0'이었던 우리 엄마는, 서울로 가자고 아빠를 꼬드겼고, 결국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온 저는 쫑알대던 입을 꾹 다문채 몇 달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어증에 걸린 것이었죠. 엄마 아빠는 제 입을 다시 열게 하기 위해, 시골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던 고모네 사촌오빠를 불렀습니다. 시골에서 따르던 사촌오빠가 현관에 들어서는 걸 보자마자, 제가 "오빠!"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답니다.


그래서 티라노가 일종의 실어증을 보였을 때도, '어? 나도 4살 때 그랬다던데, 티라노도 그러네?'라며 이번에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티라노는 아기 때부터 감각이 예민했습니다. 옷이 조금이라도 부드럽지 않으면 거부했습니다. 옷 안에 라벨이 따가우면 거슬려해서 떼주어야 입고요. 이건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엇비슷합니다.


저 역시 어릴 때부터 감각이 예민했습니다. 저 역시 목폴라는 갑갑해서 한겨울에도 입지를 못합니다. 니트가 조금이라도 따가우면 못 입고요. 옷 안에 라벨도 때론 따가워서 떼어야만 입습니다.


그래서 원래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옷 라벨이 안거슬리는 사람들도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티라노는 눈을 자주 쥐어짜듯 깜박이거나 말을 더듬는, 일종의 '틱'이 어릴 때부터 있어왔습니다. 걱정이 되면서도 저희 부부는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30대 초반까지도 말을 더듬었었어. 나는 교직을 하고 나서, 말이 씹히며 더듬는 것 때문에 수업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

"엇, 나돈데! 사실은 나도 어릴 때 말을 많이 더듬었다고 엄마가 그러셨어."


엄마 아빠인 저희도 말을 더듬었었기에 아이의 말더듬이 ADHD와 동반되는 틱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티라노는 정말 아기 때부터 마음이 매우 여렸습니다. 자칫하면 아주 작은 일에도 서러워하며 펑펑 울며 진정되지 않곤 했습니다. 별일 아닌 사소한 일조차 아주 커다란 나비효과로 작용해 일이 커져버리는 일은 흔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본인 감정파악을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감정조절이 가능할 리가 없지요.


저 역시 정말 아기 때부터 마음이 매우 여렸습니다. 저 역시 아주 작은 일에도 서러워하거나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자식 셋 중 저만큼은 엄마가 함부로 혼을 내지 못했습니다. 언니 동생은 엉덩이를 두들겨 패면서 키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저렇게 여린 것도 저를 닮았겠거니,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소한 일로 감정폭풍이 와서 울던 4살 티라노.


티라노는 2009년생이기에, 당시만 해도 ADHD가 지금만큼 확산되기 전이라 발견이 더 늦어진 것도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최근 논문들을 찾아보다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ADHD 증상이 심할수록 감정 파악과 조절이 어렵답니다. 물론, 누구나 ADHD가 아닌 사람들조차 ADHD 성향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와 티라노는 상당히 중증인 것 같습니다. 둘 다 감정파악과 조절뿐 아니라, 과몰입도 심각합니다. 좋아하는 일과 아닌 일에서 보이는 성과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티라노가 ADHD라는 걸 왜 몰랐지?'


저는 당연히 ADHD일리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30대 1 교원 임용시험도 패스한, 현직 과학교사니까요. 게다가 제 우주에선 제가 기준점이자, 정상이었고요. 그래서 저를 쏙 닮은, 티라노도 '당연히 정상'인 줄 알았습니다. (여기서의 정상이란, 비정상의 반대가 아님을 밝힙니다. '평범한, 일반적인'의 의미로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설마 현직 과학교사인 제가 ADHD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쏙 닮은 제 아이 티라노도 당연히 정상발달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사춘기가 오고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뭔가 문제가 있나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에 필요한 근거자료를 찾기 위해 논문을 찾게 되면서 이제야 비로소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속이 후련합니다.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또 눈치 없이 놓치지 않을 겁니다. 이제라도 올바른 길로 걸어갈 수 있게 제대로 이끌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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