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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불통 ADHD남아의 수학행보 결정 [1편]

by 그림크림쌤

8월 초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 갑자기 지금 선생님이랑 안 맞다며, 몇 달 쉬었다가 겨울에 2학년 선생님으로 바뀌면 다시 다니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쉬면 최상위반 다시 못 들어갈 거라는 논리적 설득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후 그 반에 붙어만 있으라고, 조금만 참으면 선생님 바뀐다고 감정에 호소하며 얼르고 달래서 겨우 유지만 한지 3개월이 넘었습니다. (09화 하나 남은 수학중단 위기가 온 진짜 이유)


물론 중간중간에 다시 그만두고 싶다는 말로 제 가슴을 철렁이게 했지요. 이렇게나 여리고 예민한 adhd 티라노의 위기를 '논리적 설득과 감정에 호소하기'라는 제 무기로 매번 넘기곤 했고요. 그러다 문득 정신이 확 차려지면서 '차라리 몇 달 쉬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라는, 어찌 보면 미친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6 때 영어학원 위기에서 비슷한 전철을 밟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06화 성실하던 초6, 어이없는 이유로 영어학원 위기가 왔다.) 영어학원 그만두고 싶다는 아이를 억지로 설득하고 달래서 6개월을 버텼습니다. 영어를 계속하게 하려고, 잘하던 국어, 수학, 한자 학습지를 그만두게 했고요. 당시 학습지 수업은 잘 따라갔고, 좋아했습니다. 반면 영어는 힘들어했고요. 부모인 저의 일방적인 강요와 통제로 어이없게도 잘하던 학습지는 중단되고, 싫다던 영어는 계속했습니다.


결국 학습지뿐 아니라 영어학원마저 결국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억지로 버티다가 영어 자체에 질려서 다시는 영어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 않게 되어버렸지요. 갑자기 생각의 회로가 반대로 돌아가더니, 이런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이번 수학학원 위기, 4년 전 영어 때와 비슷하잖아?!'


어리석게도, 그렇게 울며불며 후회했던 4년 전 일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만약 티라노가 한 번만 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그러라고 해야겠다'라고 마음먹고 기다렸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없으면 그냥 다니면 되니, 제가 먼저 입을 뗄 필요는 없기 때문이지요. 얼마 후 오지 않아도 될 날이 왔고, 저희는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 수학학원 그만두고 싶어. 학원 가기 전에는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학원이 끝나면 '휴 끝났다!'라며 안도하는 삶을 반복하는 게 너무 많이 힘들어."

"1년 동안 지도해 준 선생님 정성도 있으니, 우선 오늘은 가는 게 어때? 그리고 학원 가기 직전 말고, 학원 가지 않는 날에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오늘 너 학원 간 사이에 아빠랑 진지하게 상의해 볼게. 엄마 눈 봐봐. 엄마 진심 느껴지지? 빈말 아니야. 진심으로 네 입장에서 진지하게 긍정적 방향으로 상의해 볼게."


늘 이렇게 말하면 그만두겠다는 말이 한동안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아빠랑 상의해 봤어?"라고 운을 뗐거든요. 저는 진심이 담긴 긍정의 묘한 미소를 날리며 오늘은 늦었으니 쉬고, 주말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주말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대화하자고 말입니다. 주말에 저희와 체스도 두고, 잘 쉬던 아이가 갑자기 어떻게 됐냐고 묻습니다.


"쉬고 싶으면 쉬어도 괜찮아. 대신 선생님 바뀔 때까지 두 달만 쉬면 어때?"

"쉬는 시한이 정해져 있으면 불안해서 쉬는 게 아니잖아! 왜 엄마 맘대로 쉬는 기한을 정하는 건데!"


제 말에 티라노 사춘기 발작버튼이 눌렸나 봅니다. 이번에도 티라노 입장을 생각해 주는 척해놓고, 저도 모르게 또 일방적 통제 한 스푼을 섞은 겁니다. 저는 티라노에게 사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일방통행이었네. 네가 쉬고 싶을 때까지 충분히 쉬어도 괜찮아. 대신 두 가지만 약속해 줘."


표정이 편안해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알겠다고 약속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쉬지는 않기, 그리고 쉬는 동안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라고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건넵니다. 티라노는 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결연한 표정으로 약속합니다. 이때다 싶어 제 소망과 진심도 전달합니다.


"사실은 너무 길게 쉬진 않으면 더 좋겠어. 몇 달 쉬어도 괜찮아. 조금 쉰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놓은 네 수학실력이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니까. 6년 반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이 동네 학군지에 온 지 6년 반입니다. 수학학원 최하위반조차 떨어질 정도였던 아이가 6년 만에 최상위반에 다니게 된 거고요. 6년 반 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는 제 말에 저뿐 아니라 아이와 남편도 감정이 울컥 올라오는지 일순간 모두 숙연해집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학원에 연락해서 선생님이 바뀔 때까지 쉬어도 레벨테스트 없이 지금의 최상위반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으면 불안에 떨지 않고 편안하게 더 푹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는 8월과는 마음이 달라졌다, 수학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몇 번이나 쳤지만 말입니다.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ADHD 교사엄마가 ADHD 아이에게 전하는 학교생활백서(가제)>는 다음 달인 12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제 인생과 티라노 인생 노하우를 전부 담아 썼고, 정말 열심히 고치고 있습니다.


저와 티라노가 ADHD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나 비아냥은커녕, 늘 존중과 공감의 댓글을 주신 구독자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덕분에 이 세상에 저희의 ADHD 극복 이야기를 꺼낼 용기도 낼 수 있었습니다.


(표지사진은 2년 전,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는 티라노가 백조가 되어 날아갈 모습을 상상하며 한 올 한 올 제가 직접 그린 유화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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