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을 때부터 정말 남달랐던 ADHD아기 이야기 (4편)
언어치료를 시킬 목적으로 데려간 아동발달센터였다. 언어치료를 시작하려면 대기해야 하니, 기다리는 동안 놀이치료를 시켜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놀이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기 티라노를 키우던 우리 부부는 너무 바빠 티라노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늘 피곤했었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야간자율학습 지도까지 하루를 마치고 나면 빨라도 밤 8시였다. 밤 8시 이전에 귀가한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아기엄마에게는 당시 인문계고 근무 조건이 참 열악했다.
당시 인문계고는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그때는 담임이면 *야자감독이 아닌 날조차 매일 함께 남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어쩌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학년부장 선생님은 퇴근한다는 내 인사에 대답조차 안 하고 눈치를 주는, 그런 분위기였다. (*야간자율학습을 줄여서 야자라고도 부른다.)
그렇기에 내가 출근할 땐 아기 티라노는 자고 있었고, 퇴근하고 오면 잠깐 티라노를 보다 재우고 자는 그런 나날의 연속이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남편 역시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귀가했었다. 당시 가장이었던 나는 남편 학비까지 벌어야 해서 각종 보충수업까지 도맡아 했기에 더욱 학교에 남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늘 바쁜 엄마아빠를 둔 아기 티라노는 하루 종일 외할머니가 주양육자가 되어 30개월까지 외할머니 손에 커갔다. 엄마에게 아빠라고 잘못 말하는 것을 보고 귀엽다며 크게 웃은 사건을 계기로 30개월까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전혀 하지 않는 티라노씨를 데리고 아동발달센터에 데려가게 된 것이었다.
놀이치료 선생님이 지적한 나의 양육태도의 문제점은 이러했다.
기초조사상담을 마친 우리 부부에게 놀이치료 선생님은 "평소처럼 티라노와 놀아주어 보세요"라고 하였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똑같이 시켜서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늘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그리고 심지어는 통잠을 2년이 넘도록 자지 못해 늘 피곤해 '마지막에 제대로 놀아준 게 언제였더라?'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나는 다소 당황했지만 어찌어찌 티라노와 놀아주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지금으로 치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 해당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내가 티라노와 놀아주는 모습을 지켜보던 놀이치료 선생님은 "어머니께서 티라노와 놀아줄 때 티라노 행동에 반응을 안보이시네요"라고 말하였다. 티라노가 자동차를 밀면 "우리 티라노가 자동차를 밀고 있구나!"라고 티라노의 행동을 읽어주고 반응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티라노가 뭘 하든지 간에 내가 최소한의 말과 행동만 한 채 가만히 보고만 있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인문계고등학교 수능 과목 교사였고, 지금과 달리 0교시와 8교시 보충수업과 방과 후 수업까지 추가로 잡히는 수업이 정말 많았다. 하루 2번의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했던 방과 후 수업까지 합치면 보통은 5시간, 많게는 하루에 7시간까지도 수업을 했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말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집에 오면 목도 아프고 입도 열기 싫었었다.
선생님이 티라노와 놀아주기 시범을 보여주셨고, 고작 3분 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티라노가 노는 걸 지켜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본 놀이치료 선생님께서는 티라노와 놀아줄 테니 잘 보시라고 하며 놀아주기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단지 고작 3분 동안 티라노의 모든 행동에 '구나' 요법을 적용하여 반응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놀아주기 시작한 지 고작 3분 만에 티라노가 마음을 전부 빼앗긴 거다. 티라노는 엄마아빠는 단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고 선생님만 쳐다보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자동차들을 선반에서 하나씩 꺼내서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선물하기 시작했고, 선물한 자동차들은 어느덧 선생님 주변 반경 1미터의 원을 그리며 커져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에게 살인미소를 날리며 선물하는 내내 우리는 단 한 번도 쳐다봐주지조차 않았기에 우리 부부는 더욱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놀이치료 선생님이 한 질문에 우리는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티라노가 어머니가 출근할 때 우나요?"
"아니요."
"그럼 아빠가 출근할 때 우나요?"
"아니요."
"그럼 외할머니가 저녁에 집에 가실 때 우나요?"
"아니요."
"티라노가 주양육자 3명 중 그 누구와도 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네요. 그래서 밤마 자꾸 깨서 우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첫 번째 놀이치료 수업이 끝났고, 그날 밤부터 나는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놀이치료 첫 방문 후 엄마인 나부터 달라졌다.
놀이치료 첫 수업 후부터 나는 티라노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육아휴직까지 하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티라노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오롯이 티라노와의 놀이 이외에는 그 어떤 집안 일도 전혀 하지 않고 오롯이 티라노에게만 집중했다.
집안일과 요리는 티라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만 하고, 티라노가 하원한 이후에는 집청소는 물론이고 요리도 절대 하지 않았고, 요리를 하게 되면 끓이거나 볶기만 하면 되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놓아 셀프 밀키트를 만들어놓곤 하였다. (당시에는 밀키트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배운 대로 티라노와 놀아줄 때 "구나"요법을 적용하여 티라노의 행동을 그대로 읽어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리 티라노 목마르는구나."
"티라노 빨간 자동차를 들었네!"
"자동차를 밀고 있네"
티라노를 침대 옆에 따로 재웠던 우리는 그때부터 셋이 함께 자기 시작했다. 이렇게 첫 놀이치료 후 고작 일주일이 된 어느 날, 그렇게나 매일 밤 악을 쓰고 울며 깨던 티라노가 한 번도 안 깨고 통잠을 자기 시작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백일의 기적이 드디어 우리에게도 찾아왔고, 백일의 기적이 찾아온 날은 백일이 아닌 무려 천일만이었다.
이상으로 ADHD 중학생 티라노를 키우는, 노력하며 사는 ADHD 과학교사 엄마 그림크림쌤이었습니다.
공감과 위로가 되고 나아가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