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을 때부터 정말 남달랐던 ADHD아이 이야기 (5편)
어린이 티라노는 하도 넘어져 양 무릎이 성할 날이 거의 없었다.
티라노는 걷기 시작할 때부터 양 무릎이 정말 성할 날이 거의 없었다.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뛰어가다가도 넘어졌지만, 그냥 걸어가다가도 이유 없이 넘어지곤 했다. 하도 자주 넘어져 양 무릎에서 밴드가 없어지는 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넘어져서 다쳤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어린이집 선생님은 도대체 티라노가 다치는 동안 뭘 하셨길래 아이가 다치도록 두지?'라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도 정말 1초도 안되어 순식간에 넘어지거나 부딪히곤 했고,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돌 된 아기도 아닌 4살 티라노에게 우리는 무릎보호대를 사서 외출할 날이 있을 때면 채워서 나가곤 했고, 참 죄송하게도 어린이집에서도 무릎보호대를 사용해 줄 것을 선생님께 부탁하곤 했었다.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4살 반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런 알림장이 오기도 했다. "티라노가 자주 넘어져 속상하시죠? 오늘 보호대 하고 놀이했어요. 보호대 하고도 넘어지네요."
태어난 지 3년도 안되어 얼굴이 세 번이나 찢어져 세 번이나 꿰맨 티라노였다.
티라노가 우리나라 나이로 4살, 지금 나이로는 2살이 조금 넘은 어느 날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데리러 갔다가 선생님과 이야기하러 잠깐 티라노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님과 나는 놀고 있는 티라노를 옆에서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순식간에 손쓸 사이도 없이, 티라노가 4살반 교실에 있던 원목 테이블에 '꽝'하고 세게 부딪히는 일이 벌어졌다. 부딪힌 이마는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4살반 원목 테이블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우면 아이 이마가 찢어져?'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원목 테이블은 뾰족한 부분이 전혀 없는 원형이었고, 심지어 모서리들은 라운딩 처리가 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 시선은 티라노 쪽으로 향한 채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잡을 새도 없이 걸어가다가 갑자기 원형 테이블 쪽으로 넘어져 부딪혀버렸던 것이다.
원장님과 나는 이마가 찢어진 티라노의 이마에 응급처리를 한 후 병원으로 향했다. 티라노는 이마를 다섯 바늘이나 꿰매게 되었다. 태어난 지 3년도 안된 티라노는 턱과 눈옆에 이어 이마까지, 얼굴만 따져보아도 세 번이나 꿰매 그랜드슬램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과 고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티라노가 유독 자주 넘어지는 게 ADHD 때문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4살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과 엄마이자 고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티라노가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독 자주 넘어지고 다치는 이유를 '설마 하니 티라노가 ADHD라 그런가?'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를 않았다.
ADHD는 생각도 못한 4살반 어린이집 선생님은 엄마인 내게 자주 이렇게 말하시곤 했다. "티라노가 다리 근육 힘이 약해서 자주 넘어지는 것 같아요. 계단 오르내리기 많이 시켜주세요." 당시 남학생 반에서 한두 명씩은 ADHD로 추정되는 학생들을 자주 다루어왔던 나 역시, 티라노에게 ADHD 성향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ADHD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전이었다. 예전엔 ADHD라고 하면 교사들조차 당연히 교실에서 마구 돌아다니거나 다른 아이들을 때리고 공격하는 그런 과잉행동과 충동 유형이 강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티라노는 남자아이임에도 활동적인 놀이보다는 블록놀이나 퍼즐 맞추기, 모래놀이 같이 정적인 놀이를 좋아하는 참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고 말이다.
그렇기에 티라노가 머리는 큰데 다리 발달이 머리에 비해 더뎌 무게중심을 잡지 못해 자꾸 넘어진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뱃속에서부터 머리크기가 3주가 빨랐었고, 영유아건강검진에서도 늘 머리둘레만 상위 95%로 짱구머리를 자랑하던 티라노였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티라노의 신체발달상태가 다리힘이 약해 무게중심을 견디지 못해 넘어지기 쉽다는 과학적 근거로 들이밀기에 딱 좋은 구조였다.
사실 당시에는 티라노가 '자주, 유독' 넘어지고 다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이유는 내게 또 있었다.
엄마인 나도 늘 자주 넘어지고 부딪혀 멍이 성할 날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원래 남들도 나만큼 부딪히고 멍이 들지만 어디에 부딪혀서 멍이 든 건지 기억이 안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어쩌다 다른 사람들이 "그림크림, 너 다리 시퍼렇게 멍들었네! 어디 부딪힌 거야?"라고 물으면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몰라~ 어디 부딪혔는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속으론 '다리의 이 멍들을 일일이 어디 부딪혔는지 기억하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퍼런 멍 몇 개 있다고 놀라기는! 진짜 호들갑이 심하네!'라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부딪혀 크고 작은 멍이 드는 게 내겐 일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참으로 참을성이 없어 별일도 아닌 일에 유난스럽고 호들갑스럽스러운, 다소 가벼운 사람으로 인식되기까지 했던 거였다.
부딪히는 게 일상이라, 심하게 부딪혀도 "아!" 한번 외치고 나서 부여잡고 끙끙 앓다 보면 말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듯 왜 부딪혀서 시퍼런 멍이 들게 된 건지를 하소연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딪혀 시퍼렇게 멍이 들 수도 있지. 별일도 아닌 일에 진짜 호들갑이 심하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나만큼 자주 부딪히지 않고, 어딘가에 부딪혀 멍이 드는 일은 보통은 연중행사라는 것을 알게 된 건 30살이 훌쩍 넘어서였다. 그래서 남들은 시퍼런 멍이 한 개만 생겨도 그렇게나 멍이 들었음을 내게 열변을 토하며 토로한 것이었던 거다.
그러나 내게는 열변을 토하는 그들이 너무도 이상해 보이는 데 이는 마치 매일 밥이 아닌 빵만 먹는 나에게 호들갑을 떨며 "어머 넌 어쩜 밥이 아닌 빵만 먹고살 수가 있니. 사람이라면 밥을 먹어야지!"라고 하는 기분인 것이었다.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빵이 그들에게는 너무 이상한 식사였던 거다. 내게는 빵이 주식인 게 한평생 당연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은 다른 사람들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살았고, 나만 주식이 빵이었던 거였다.
이렇게 내겐 별일이 아닌 늘 있는 이벤트가 사실은 그들에게는 연중행사처럼 드문 부딪힘이었던 거였다는 사실을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 당시에는 티라노가 유독 자주 넘어지고 자주 다쳐도 남들도 이 정도는 넘어지고 다치며 사는 줄로만 알았기에 크게 티라노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를 못했던 거였다.
이상으로 ADHD 중학생 티라노를 키우는, 노력하며 사는 ADHD 과학교사 엄마 그림크림쌤이었습니다.
공감과 위로가 되고 나아가 도움이 되는 글을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