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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미 Aug 17. 2023

5. 제주에 대해서 알기(1)

사람들의 바람에서 이뤄진 신들의 이야기

 제주도를 말하려면 바람에서 시작해야 한다. 섬이기 때문에 바닷일을 많이 했고, 바닷일을 나가면 바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서방님을 기다리는, 친형제를 기다리는 그 간절한 마음이 또한 바람이다. 무사하게 바람에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바람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만든다. 그것이 신이건 돌이건 어떤 형태이건 간에 바라는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제주도에서 제일 큰 행사가 '영등제'인 이유도 그렇다. 바다의 신 '영등신'에게 제를 올리고 기원을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염원,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신당이 있는 것도 마을신에게 그들의 바람을 원했던 마음의 안정이었다. 마을 신당(본향당)에는 당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하얀 종이들이 걸려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는 하얀 종이(소지)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염원이 마음으로 전해져 담겨 있다.


교래리자연휴양림에서 캠핑을 할 때 만난 노루


 제주도 사람들의 바람이 어떤 형태로 문화에 남아 있는지는 마을마다 다르다. 마을 이야기는 방대하기에 다른 글에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이야기에서는 신에 관한 이야기로 짧게 끝낼 수밖에 없다.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과 함께'에서 잘 나와 있어서 유명해졌다. '신과 함께'에서 나온 신들이 대부분 제주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금도 동네 할망 집안에는 '돌'을 모시기도 한다. 신구간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이유는 집을 지켜주는 신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 재밌고 다양한 신의 이야기가 있다. 신들에 관해 출판된 책보다는 비매품 책이 더 많아서 도서관에서 찾아봐야 한다. 어렵게 구한 책들이지만, 이 책들  몇 권 읽었다고 신화를 다 알지는 못한다. 진짜 이야기는 한 동네에서 백 년을 사신 분들이 가지고 있다. 우리 동네 함덕에서는 백세가 넘으신 하르방 한 분이 계신다. 백세 넘으신 할망은 더 많지만, 하르방은 한 분뿐이다. 백세 하르방은 언제나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시고 산책을 나오신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보조 기구에 의존해서 걸으시지만, 그래도 매일 나오신다. 항상 멋진 중절모를 쓰시고 천천히 걸으신다. 하르방에게 함덕 신화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듯이 재밌게 말씀해 주신다.

 '어느 날, 함덕에 살고 있는 어부가 낚시를 하러 갔어. 운이 좋게도 첫 낚시에 대어가 걸린 듯 무거워서 실랑이를 벌였지. 한참 후에 낚싯대를 올리니 커다란 돌인 거야. 실망한 어부는 돌을 다시 바다에 던지고 낚시를 했어. 그런데 또 월척이 걸린 듯 낚시 줄이 팽팽해지는 거야. 힘겹게 올린 낚싯대에는 또 돌이 걸려왔어.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다시 돌을 바다에 던지고 낚시를 했지, 세 번째에도 그 돌이 걸려 온 거야. 어부는 이게 이상하기도 하고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 돌을 집으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돌을 들고 가는데, 동네 올레에서 돌이 쿵하고 떨어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거야. 아무리 옮기려 해도 꿈쩍도 안 해. 그래서 함덕 신당은 그 돌이 자리 잡은 곳에 지어졌고, 지금까지 있지. 그 돌이 우리가 모시는 신이야.'

 제주도는 마을마다 신당이 있는데, 이 신당마다 이런 이야기가 다 있단다. 언젠간 이 이야기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제주도를 만드신 설문대 할망, 바다를 지켜주는 영등신, 제주도 사람을 있게 한 고량부 삼성(고씨, 양씨, 부씨 3 성씨가 제주도 태초의 성씨), 그들을 만난 바다에서 온 공주 셋, 집안을 지켜주는 신들,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 하늘의 신이 된 사람 이야기 등 수백 명의 신 이야기가 있다. 한라산 백록담도 하얀 사슴 백록이의 이야기가 있다. 한라산을 지키는 산신이 키우던 사슴이 백록이었고, 그래서 하얀 사슴을 죽이면 3대가 멸한다고 했단다.

 제주를 지키는 신은 제주사람들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염원이다.


동백꽃은 4.3의 상징

잊지 말아야 할 날, 4월 3일

 여행하는 사람은 몰라도 제주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4·3 사건이다. 부캐로 문화부 기자역을 잠깐 하던 시절에 4월 3일이 있었다. 취재를 하러 가야 하기도 했고, 가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도서관에서 4·3 자료를 찾아봤다. 이런 문서들은 보통 소장용이고 대여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화가 치밀어 오름을 꾹꾹 누르고 북촌 너븐숭이를 찾아갔다. 이곳에 가면 눈물이 난다. 좁은 방안 가득하게 새겨진 사람들의 이름과 마당 한편에 이름조차 없는 아기의 무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리고 4·3 평화공원에 가도 눈물이 난다. 4·3 평화공원 뒤편에는 이름이 새겨진 묘석이 끝이 안 보이게 놓여 있다. 시신을 못 찾아 이름만 새겨 놓은 것이다. 정적이 흐르는 그곳에서 우는 까마귀가 누군가를 대변하는 듯 목놓아 울고 있다. 우리도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에 관계가 없는 제주도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다. 누구의 부모이고, 자식이고, 동생이고, 누이였다. (직접 책을 찾아 읽어보고, 그곳에 가길 바라는 마음에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겠다)


성스러운 산 성산이 보이는 해변


아직 남아 있는 문화

 제주도에는 아직까지 남은 결혼 풍습도 있다. 결혼식은 3일을 하고, 아무리 못해도 하루 종일은 한다. 돌잔치도 하루 종일 한다. 예전에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잔치를 며칠씩 하곤 했다. 그 날짜, 그 시간에 오기 힘들기 때문이었는데, 제주도는 아직도 그렇게 한다. 어느 날에는 동네를 걷는데, 큰 잔치가 있는 것처럼 돼지를 잡으시고, 음식을 하루 종일 하고 있는 집이 있었다. 물어보니, 내일 딸 결혼식이 있다고 하셨다. 들려서 고기 먹고 가라 하신다. 이 음식을 직접 다 준비하냐고 하니, 잔치 음식은 직접 준비하신다고 하셨다. 그야말로 마을 잔치다. 호텔에서 결혼하는 결혼식도 가봤었는데, 시간이 적혀 있지 않고, 신식 결혼식도 하루 종일 한다. 편한 시간에 오라고 해서 오후 3시쯤 갔는데, 신랑 신부는 이미 지친 상태 손님을 맞고 있었다.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맞는다고 한다. 육지에서 결혼식을 한 사람도 제주도에 와서 마을 잔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 특이했던 건 제사를 형제끼리 나눠 갖는 부분이다. 첫 째 아들이 다 가져가는 육지 풍습과는 달리,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명절과 제사를 나눠 주신단다. 그래야 둘째, 셋째, 막내 집에도 가 볼 수 있다고 하신다. 참 합리적인 논리다. 설날, 추석, 제사가 한 집으로 몰려 가는 부담이 없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사투리 이야기를 빼먹을 수 없다. 제주도는 특히나 사투리가 심한 곳이고, 우리가 흔히 알던 사투리가 아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많다. 실제 어르신이 하는 말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기자회견실에서 브리핑을 할 때도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녹음을 하고 다시 듣고, 물어봐서 이해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제주어 교과서를 구해서 공부를 했다. 지금은 흐름은 다 알아듣는다. 아직도 생소한 단어가 있지만, 문맥상 이해할 수 있다. 글자에는 '아래아'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천에서 시내 가는 버스를 타면 '고으니모르'라는 정류장이 있다. 곱다라는 뜻의 '고으니'와 동산을 의미하는 '모르'가 합해진 말인데, 고운 동산이라는 뜻은 아니다. 고운님을 바라보던 동산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처음에 이 정류장을 보고 문자에서 오는 이질감으로 인한 충격이 있었다. 한글이지만 없어진 문자라고 생각했던 '아래아'를 봐서 그런지, 버스 정류장 이름에 쓰는 공식적인 글에서 낯선 문자를 봐서 그런지 눈길이 가기 마련이었다. 이런 지명을 보면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대부분 이야기를 해주신다.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고으니모르

 한 번은 인쇄소를 찾았는데, 아래아 쓴 거 있냐고 물었다. 제주어 폰트가 따로 있단다. 아래아와 아래야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인쇄소에서는 따로 편집을 해주신다. 제주어에는 일반적인 사투리가 아니라 고어가 남아 있고, 유네스코에서 사라지는 언어로 지정한 바 있어, '제주어'라고 부른다. 제주어 말하기 대회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아래아와 아래야를 발음할 수 있는가도 본다. 동네 할망들은 거의 대부분 발음하실 수 있다. 우리말에서 사라지고 있는 말들을 제주어에서는 살리고 있는 증거다. 제주어 특징이 말이 짧고, 마지막에 '', ''을 붙이는 이유는 바람 때문에 말 전달이 쉽지 않아서라는 설이 있다. 어멍, 아방, 하르방, 할망, 밥 먹언, 어디 간 등.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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