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는 용천수가 6군데가 있다고 한다. 용천수는 짠물이 아닌 민물이 나오는 곳을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바다에서 용천수가 나온다. 용천수는 여름에도 엄청 차가운 물이다. 함덕 바다에 두 군데의 용천수가 나와 돌담으로 쌓아 원담으로 만들어 놨다. 원담은 물이 빠졌을 때 고기등을 낚으려고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인데, 함덕은 용천수가 흐르는 곳에 원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함덕포구 앞에 앞갯물이 있다. 앞에 있어 앞갯물이고, 갯물은 원담처럼 물고기를 잡으려고 만들어 놓은 곳을 원 또는 개라고 불렀다. 그래서 갯담, 원담이라고 부르는데, 함덕은 이곳도 용천수가 나오는 곳이라서 갯물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장어를 가둬서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삼춘들이 가끔 개울물처럼 뭔가를 씻으러 온다. 물이 깨끗할 때는 채소를 씻고, 아닐 때는 옷을 빨기도 한다. 또 남탕, 여탕으로 구분되어 더위를 식히며 씻을 수 있는 곳, 고두물(또는 고도물)이 두 군데 있다. 대명리조트 앞에 찻길에 여자만 출입 가능한 고두물이 있고, 건너편 골목 안쪽에 남자만 이용하는 고두물이 있다. 마지막 하나는 함덕 오일장 뒤편에 있다. 왜 그 안쪽까지 용천수가 나오는지는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전에는 그 골목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도로를 만드려고 땅을 메꾸는 공사를 해서 바다가 줄어들었다. 함덕이라는 이름도 함씨 할망의 덕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함씨 할망이 함덕에서는 덕을 쌓으신 분이었다. 함씨 할망이 돌다리를 만들어서 지나다닐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한다. 알고 보면 마을 안쪽의 용천수도 생뚱맞은 건 아니다.
함덕 용천수
돌은 화산섬이라서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공사를 하려고 땅을 파면 돌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돌담을 쌓은 것도 돌이 많기 때문이었다. 집을 지을 때 땅속에서 나온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돌담이고,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팠는데 나온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산담이고, 밭을 경작하기 위해서 땅을 정리하다 나온 돌을 옆에 쌓아 올린 것이 밭담이다. 그리고 마소(말과 소)들 침입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마소는 흔하게 풀어서 키웠다. 지금도 방목하는 곳이 많다. 돌은 흔하지만 때로는 신처럼 모시기도 한다. 제주도의 돌은 '돌문화공원'에 가면 가장 잘 볼 수 있다. 이건 단연컨대 돌에 관해서는 이곳이 최고다. 평생을 돌만 모으신 관장님이 만드신 곳이다. 흔하게 보던 돌하르방은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고, 진짜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모를 거대한 돌하르방은 그분이 돌문화공원에 다 모아놓으셨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돌하르방은 개발에 치여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진짜 돌하르방은 무슨 목적이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고, 추측으로는 멀리서 적군이 보고 거대한 민족처럼 보이려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실제 돌하르방은 3미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돌 조각상으로 33개가 남아 있다. 마치 모아이상이 생각난다. 제주도 전역에 있는 역사가 있는 돌들을 지켜낸 분이 지금 돌문화공원 백원장님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가끔 뵙는데, 손에 꼽는 재밌는 삶의 이야기가 있으신 분이다. 맛있는 거 사주 신다고 하실 때는 작은 수첩을 꺼내어 전화를 거신다. 바로 훔치고 싶은 찐 맛집 리스트가 적힌 수첩이다. 인터뷰를 하러 가서 처음 알게 됐는데, 그때 나에게 설문대 할망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셨다. 나중에 물어봤지만, 어떻게 내가 미술을 전공했는지 아셨냐고 했더니, 그런 거 같아 보였다고만 하셨다.
제주도 돌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돌문화공원을 걸어봐야 한다. 동자석의 익살스러운 표정들도 하나하나 관찰해 보면 재밌다. 동자석은 무덤 앞에 놓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돌 조각상이다. 돌아가신 분을 닮게 만든 조각상이 동자석이다. 생전에 욕심쟁이였다면, 그대로 그런 형상으로 표현한다. 이 부분이 재밌다. 망자의 솔직한 삶이 담겨 있다. 살아생전에 덕을 잘 쌓았으면, 마을 사람들이 돌을 날라 '산담'을잘 만들어 준단다.
그리고 환해장성도 중요한 돌담이다. 환해장성은 개발에 치여서 많이 훼손되고 남아 있는 돌이 많지는 않다. 해안도로를 가다 보면 가끔 보이는 작은 안내판에 환해장성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찰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봤을 것이다. 우리가 흔하다고 쉽게 지나쳤던 작은 돌도 다시 본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게 너무 작은 것일지라도.
낙조때 바다위의 돌
자연재해 이야기는 안 짚고 넘어갈 수가 없지.
우리나라에 매년 태풍이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업보이다. 지구가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 환경이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우리가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저질러 놓은 일이니까 우리가 받는 것이다. 도시에서도 분명 태풍은 왔었는데, 그 태풍을 실제 느끼진 못 했었다. 비바람이 많이 부는 정도였으나, 제주도에서 태풍은 진짜 태풍이다. 밖을 나갈 수 없는 정도가 태풍이다. 집안에 있어도 무서울 정도다. 바람소리가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쪽에서 오는 태풍은 서귀포가 처음을 그대로 맞이하고, 한라산을 넘어서 살짝 약해진 태풍을 제주시가 받는다.한라산이 지켜주는 것만 같다. 서귀포에 사는 사람에게 태풍에 대해서 물어보면,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문 날아가고, 신호등 꺾이는 정도란다. 그러면서 괜찮다고 한다. 함덕은 북동쪽이라서 태풍 피해가 심한 곳은 아니지만,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태풍이 온다고 하면 그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는 집에만 있어야 한다.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면 대부분 북상해서 약해진다. 집에만 잘 숨어 있으면 괜찮다. 물론 가게를 한다면, 대비를 해놓고 문을 닫아야 하고, 직장을 다닌다면 웬만하면 그 시간에는 나가지 말아야 한다. 태풍이 오기 시작했을 때, 탑동 이마트를 간 적이 있었다. 빨리 장을 보고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그때 태풍은 서귀포에 있었고, 아직 북쪽은 비가 오는 정도였다. 이마트 쇼핑에 빠져서 바깥세상은 등한시하고 재밌게 놀다가 밖을 나왔을 때, 태풍이 이미 한라산을 넘어왔다. 탑동 바다에서 파도는 도로를 덮쳤고, 우리는 그 모든 재난을 뚫고, 집으로 향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위험한 곳을 몇 번을 거쳐서 집으로 왔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집에는 우산이 없다. 잔잔한 비는 그냥 맞고 다니고, 웬만한 비도 그냥 잘 다닌다. 우산을 써도 비는 맞는다. 비가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사선으로 들이치기 때문에 우산이 사실상 소용없다. 그리고 태풍에는 우산을 쓸 필요가 없다. 밖에 나가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