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는 특이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영화감독은 술집을 하고, 가수는 음식점을 하고, 책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다양한 삶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이 제주도이기 때문일까. 이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나도 술집을 할 때, 손님 누군가가 조천도서관에서 내 책을 읽었다고 이야기해서 같이 술 한 잔을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손님은 내가 그 책을 쓴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고, 기회가 있는 곳이 제주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처음 장사를 하는데 회포차를 했겠지. 도시에서도 회사를 벗어나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회사가 많이 없는 제주도에서는 다양한 삶이 더 많이 보인다. 가게를 하는 데에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은 것도 한몫했을 게다. 서울에 비해서 저렴한 가겟세, 경쟁 상대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장점이다. 이것도 옛말이 됐지만, 그래도 아직도 시골 마을을 찾아가면 시작하기는 쉽다.
산방산은 어느 곳에서 봐도 신비롭다. 저렇게 혼자 우뚝 솟아 있을까.
그렇다고 모두 잘 사는 건 아니다. 망해서 가게를 나가거나, 제주 생활이 맞지 않아서 다시 도시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집에서 나오는 벌레 때문에 이사 가는 사람도 봤을 정도다. 제주도 벌레가 무서운 건 지금도 여전하다. 제일 무서운 벌레는 단연코 '지네'다. 지네는 한 뼘정도 되는 길이에 엄청 무섭도록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고, 무시무시한 붉은색을 가졌다. 지네는 흔한 벌레라서 못 볼 수가 없다. 언젠가는 마주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잡기가 쉽지 않다. 빠르기도 하지만, 무서워서 잡기가 어렵다. 우리 집에는 든든한 고양이들이 있어서 고양이들이 잘 잡아준다. 바퀴벌레는 미국에서 왔는지, 엄청 크고 날아다니기도 한다. 한국의 작은 바퀴벌레가 아니라 이렇게 외국에서나 본 커다란 바퀴벌레가 스스로 날아오지 않았다면, 배를 통해서 왔을 것이다. 실제 섬나라에서는 토종 동물 외에 외래종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다. 이 무서운 바퀴벌레는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만큼 당당하다. 그 외에도 꼽등이, 콩벌레, 거미 등 수많은 벌레들이 존재한다. 다 무서운 건 아니다. 집에 반딧불이가 들어왔을 때, 신기하고 신비로워서 불을 끄고 반딧불이를 감상한 적도 있었다. 작은 제주 도마뱀도 가끔 집에 들어온다. 도마뱀은 귀여워서 사진도 찍어 놨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에서 제주도를 떠나는 사람도 많이 봤다. 친했던 이웃이 떠나면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바닷가를 찾았다. 언제나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겨진 자의 쓰라림이 있다. 서로의 헛헛함을 달래주며, 우리가 둘이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서우봉에서의 짙은 노을
새로운 기회의 땅처럼 느껴지던 때는 벌써 옛말이 돼 가고 있다. 지금은 가겟세도 비싸졌고, 경쟁자도 많아졌다. 그래도 돈을 많이 벌 생각이 아니라면 재미있는 기회는 많다.
다시 가게를 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가게는 쉽게 구했고, 회포차를 한 것도 잘한 일이었다. 가게를 하면서 '진상'손님도 격하게 만나보지는 못했고, 술 한 잔 하면서 풀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건 아마도 운이 따라 줬을 것이다. 남편은 회를 담당했고, 나는 서브 메뉴와 홀을 담당했다. 어설프게 보이지 않으려고 남편에게는 일식집 주방장이 입는 가운을 입히고, 두건을 쓰게 했다. 한 점, 한 점 정성스레 썰어내는 회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우리는 그 방식을 고수했다. 빨리하려고 대충 하게 되면, 회는 위험해진다. 균이 들어가 배탈이 날 수도 있고, 물기를 꼼꼼히 빼지 않으면 회는 맛이 없어진다. 불만이 있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이해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 집은 음식이 늦게 나오니까 미리 주문을 해야 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하지 않았지만, 손님들끼리는 공유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배려로 그렇게 꾸준히 장사는 잘됐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휴일은 휴일 같지도 않았다. 차가 없었던 때라서 차를 얻어 타고 장도 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쉬기도 해야 했다. 1년쯤 그렇게 보내고 주 2회 휴무로 바꿨다. 회사원들은 주 5일 근무니까, 우리도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겠다고 우겼다.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었다. 휴무 때 오는 연락을 받아내야 했지만, 이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이해해 줬다. 사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옳은 결정이었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고, 우리가 버텨내는 한계도 넘어섰다. 그러고 나니 가게를 나가는 것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은 건강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우리는 점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휴무를 자주 이어갔다. 문을 잘 열지 않는 가게로 소문이 나면서 여행일정을 우리 가게 스케줄에 맞춰가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열어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물론 손님들의 욕도 많이 먹었겠지만, 실제 우리한테 욕을 하진 않았다. 사실 우리가 좋아했던 가게가 싫어진 계기는 있었다. 건물주의 마찰이었다. 장사를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세를 올렸고, 우리 가게를 자신의 가게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3년 반을 하고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었고, 감사의 인사를 다하지도 못 한채 문을 닫았다. 여행에서 단골이 된 사람들, 제주로 발령이 나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 이주를 해서 제주로 온 사람들, 우리처럼 가게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집에 들어가다 술 한 잔이 생각나서 들리는 마을 사람들,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우리를 찾아줬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 가게에서 최고의 단골이었던 고양이들까지 우리는 모두 좋은 추억으로 남겼다.
바닷가에 세워진 해녀삼춘의 오토바이
살면서 해보고 싶었던 마음 한 켠에 숨겨 놓았던 꿈이 나에게는 없어서 딱히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있다면 제주에서는 도전해 보기 좋은 곳이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면서 살아서 딱히 숨겨 놓았던 꿈은 없다. 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면 제주에서는 해봐도 된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이유와 삶에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삶의 시공간은 사는 집, 여유로운 마음, 할 일이 없어 남는 시간, 타인으로부터 해방된 거리와 시간으로 인해 여유로워진다. 이렇게 여유가 생긴 삶의 시공간에는 다른 것들을 채워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는 사람은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낚시를 해보고 싶은 사람은 낚시를 하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글을 쓰고, 악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악기를 연주해 보고...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많이 해봤다. 숨겨 놓았던 꿈은 아니지만, 나도 한 번 해볼까...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소설을 읽다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써 본 적이 있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모른다. 읽기는 많이 읽었으니, 쓸 줄 알았다. 써보니 어렵긴 하지만 재밌었다. 언젠가는 그 소설을 마무리 지어 책으로 나올까 싶지만 책으로 안 나오면 어떤가. 소설을 써봤다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만든 주인공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주인공의 삶을 내 맘 데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또 한 번은 웹툰을 보다가 나도 웹툰을 그려볼까 생각해서 스토리부터 구상하고 캐릭터도 그리고 몇 편의 이야기를 그렸던 적도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작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작사를 한 적도 있었다. 노래도 없이 그냥 작사를 해봤는데, 이건 어려웠다. 음악을 하는 지인에게 작사를 하면 내 글로 음악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일단 써보고 좋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작사를 써 내려갔다. 이것도 언젠가는 노랫말로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기대보다는 하는 과정이 재밌는 것이다. 소설이나 웹툰, 노랫말이 내 노트북에만 있으면 어떠하리.
나무를 깎아보고 싶어서 숟가락을 만들기도 했고, 인센스 향이 좋아졌을 때는 인센스 스틱과 콘인센스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