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십 년을 살았다고 해서 이주민이 아닌 것은 아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은 아직도 물어본다. 원래 제주사람이냐고 묻는다. 이름을 물어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자랐느냐 일까. 뾰족한 시선으로 본다면, 너와 나를 나눠서 편을 만드는 것만 같다. 하나, 두루뭉술하게 본다면, 그냥 궁금해서 일 수도 있다. 어찌하였든 항상 듣는 말을 십 년째 듣고 있다. 이젠 무딘 상처처럼 감정의 변화가 없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런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니다. 제주에서 사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제주가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든 나만의 행복 기준이 있어야 한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안녕해야 한다. 행복의 요건은 나이대별로 변하기에 나만의 기준이라고 해도 절대적이진 않다. 이십 대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었고, 삼십 대가 되었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 지금은 사십 대가 되어 보니, 행복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다 해봤으니 이제는 비울 줄 알아야 한다. 사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비워 가는 과정 같다. 그전까지 채워 놨던 것들을 버려야 한다. 사십 대는 아직은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 비워져야 하는 것도 있다. 이러면서 점점 비워 나가서 죽을 때가 되었을 때는 미련도 없이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버려야 기본적인 것을 지킬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건강이다. 건강을 위해서 좋아하는 것, 몇 가지는 버렸다. 습관도 몇 개는 버렸다. 원래 인간 기대 수명은 40세쯤이라고 한다. 그 이후부터는 의학의 발달로 연명되는 삶이다. 어느 정도 아픈 것은 고칠 수 있으니, 우리 몸은 고쳐서 계속 써야 한다. 그 과정이 유쾌하지 않아 건강을 최대한 지켜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마도 작년 수술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피부암 수술은 생각보다 무섭고 힘든 과정이었다. 이제는 햇빛을 맞는 일은 버렸다. 이것도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환경오염이 오존층을 뚫었고, 뚫린 사이로 자외선이 직접적으로 나의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환경이건 이웃이건 어디든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지구를 뭐라고 안내했냐면, "무해함"이라고 한 단어로 설명했다. 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우주인이 지구 여행을 왔다. 십 년을 여행하고 안내서에는 이렇게 썼다. "대체로 무해함", 나는 이 말이 섭섭하게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무해하게 산다는 것은 노력해야만 하는 일이다. 은하수에 지구는 무해한 존재라고 썼던 것은 여행하기에 무해한 별이다라는 것인데, 이것만으로도 여행을 하기 좋은 기본 여건은 갖춘 것이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여건이 치안인 것처럼 말이다. 나도 지구에게 무해했으면 좋겠다. 이웃에게도, 처음 간 식당에서도,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오름에게도 무해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플라스틱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런 거 하나하나 생각하고 실천하고 그러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 하나씩 천천히 하면 된다. 무해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추자도 가는 배에서 본 전경
마지막 편에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 예전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가는데 이런 태도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쓴 글이었는데, 여기에 실으면서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시다. 소설, 시는 계속 써보고 있는데, 어렵긴 하지만 재밌다.
삶의 태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리라
빨리 꽃을 피우기 위해
미처 뿌리를 다 내리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리라
단단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급해하지 않으리라
비록 작은 꽃이라도
비록 때늦은 꽃이라도
나의 결실로 피울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양분으로 삼으리라
후회하지 않으리라
낮에 걷던 길에서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하찮은 돌멩이 하나 치우지 못한 일을
잠들기 전에 생각나 마음속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후회하기 전에
눈에 보이는 걸림돌을 바로 치우리라
어느 날
시가 쓰고 싶다면 시를 쓰리라
어색하고 부끄러워도 무언가를 끼적이리라
징검다리 사이의 물이 흐르는 곳을 바라만 봐도 시가 써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지 말고
당장 펜을 들고 무엇이라도 끼적이리라
나의 이야기를 만드리라
살바도르 달리처럼 자서전을 내가 쓸 수 있을 만큼
창피한 이야기도, 자랑스러운 이야기도, 행복한 이야기도, 괴로운 이야기도
모두 나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내가 써놓은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리라
작은 움직임에 흔들리지 않고 지켜보는 고양이가 되리라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리라
쉽게 다가가고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느긋하게 바라보리라
느림의 미학을 마음에 담으리라
누군가 건네준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라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가지리라
받은 호의는 쌓아두지 않으리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도 베푸리라
선순환을 믿고 먼저 베푸리라
예술을 느끼리라
몰라도 예술을 감상하고 충분히 느끼리라
지식을 앞세워 느끼지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감상하리라
좋아하는 그림 하나
좋아하는 음악 하나
좋아하는 책 하나
좋아하는 영화 하나
좋아하는 춤 하나
좋아하는 작가 하나
서슴없이 말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느끼리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위 사람이 알게 하리라
그리고 주위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 사람을 위한 선물을 고를 때
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쉽게 떠오르게 하리라
나의 기준을 만드리라
행복의 기준
성공의 기준
옮음의 기준
실패의 기준
이런 기준들은 나를 정의하리라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 따위를 믿지 않으리라
사회가 정의해 놓은 기준 따위를 믿지 않으리라
계속 써 내려가야 하겠지만, 제주에서 살면서 마음도 생각도 좋게 키워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둘이 제주로 내려와 십 년을 살았다. 앞으로 어디서 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서 살든 무해하게 행복하게 살면 된다. 요즘은 제주가 우리를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조용하던 함덕 우리 동네에는 스타벅스, 파리바게트, 버거킹, 다이소가 생겼다. 점점 우리가 지내고 싶은 공간이 줄어드나 생각하다가도 말없이 푸르기만 한 저 바다를 보면 마음이 진정된다. 아직까지는 이 아름다운 바다가 상쇄시켜주고 있구나.
제주 자연의 아름다운 오름
제주에서 10년을 살았다. 2013년에 와서 지금은 2023년이다. 십 년을 살아보니, 제주에서는 자연을 좋아하고 귀찮음을 이겨내야 하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유는 시간과 공간에서 모두 이뤄져야 하는데, 제주는 그것이 가능했다. 시간적인 여유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서 나의 시간 밸런스를 맞추면 된다. 공간적인 여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온다. 불특정다수로부터 거리적인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서울 생활할 때는 이런 여유가 없이 타인과의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웠다. 제주도는 1,850.28 k㎡ 면적에 67.8만 명이 살고 있고, 서울에는 605.24k㎡ 면적에 942.8만 명이 살고 있다. 물론 제주도에는 한라산과 오름 등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구로만 봐도 여유롭다. 나는 이런 공간적인 여유로움을 좋아한다.
제주는 십 년 전에도 아름다웠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거문오름에 오르다
10화로 [제주에서의 여행 같은 삶] 마침.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주를 바라본 저만의 시선이 절대적으로 맞는 것도 아니고, 다 틀린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가 느낀 것이 일부일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으니 직접 제주를 느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