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따로 또 같이 쓰는 문장>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나'라는 작은 집에서 함께 복닥거리며 내내 살아가고 있었다. 근거 없이 서로를 치켜세우고 공감하며, 그러나 대부분은 오해하고 비판하지만, 때로는 어기적거리며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여러 모양을 한 수많은 자아는 그렇게 시끄럽게 다투고 조율하며, 하나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내 속에는 내가 왜 이렇게 많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난 더 심플하고 명쾌했을 텐데. 이건 꽤 어려운 문제이니 극단의 반대편으로 생각을 보내본다. 인간에게 한 가지 감정과 욕구만 존재했다면, 높은 확률로 인류는 지금의 눈부신 번성과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내면을 가진 인간은 사람보다 로봇에 가까웠을 테니.
자유의지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복잡한 상황도, 어려운 선택도, 환경을 딛고 일어설 이유도, 끝까지 버티며 강해져야 할 필연성도 사라진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으니, 상처받을 일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고통과 기쁨이 맞물려 다층적인 깊이를 만들어내는 인간다움도, 그 속에서 성장하는 경험도 사라진다. 질문도, 호기심도, 충돌도 없는 세계. 스스로를 갉아먹듯 멸망으로 치달았을 디스토피아가 그려진다.
서로가 달라서, 너무나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해서, 세계는 이토록이나 복잡하고도 다층적인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우리는 그 복잡성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단일한 자아가 아닌 다중적인 자아로 거듭났는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 안락한 단순한 삶, 갈등과 자유가 뒤얽힌 지뢰밭에서 사랑받고 성장하는 삶. 만약 두 삶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파란 약과 빨간 약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내 안의 수많은 자아는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태어났다. 더 잘되기를 바라고, 덜 후회하기를 바라고,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는 충정 때문에, 부지런히 비난하고 불안했던 것이다. 그 모든 순간들은 결국, 사랑이었다. 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비틀거리며 미숙한 사랑을 지속해 왔던 것이다.
"서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사랑은 매번 서투르고
짝사랑이며 늘 첫사랑입니다."
-<나태주, 너 자신을 아끼며 살아라>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자기 마음조차 완전히 알지 못한 채 매번 처음처럼 사랑을 배운다. 서툴게 충고하고, 어설프게 다그치고, 습관처럼 밀어붙이며 삐걱거리는 최선으로 사랑을 했다. 진심이기에 두렵고, 잘하고 싶어 간절했기에 머뭇거리는 영원한 사랑의 초보로 말이다.
나는 그렇게 늘 처음처럼 내 안에 서로를 위하고 있었다. 성공이라 할 수 없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인생이었던 지난한 여정을 되돌아보면, 난 아무래도 빨간 약을 선택할 사람 같다. 내 안의 수많은 ‘나’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진하게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비록 자주 어긋나고, 실망하며 주저앉기도 했지만, 내 안의 자아들이 날 위해 갈등하고 애썼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작고 소란한 존재들을 끌어안고 다시 삶이라는 낯선 길 위에 선다.
진심이면 좋겠다.
짝사랑처럼 외롭더라도,
첫사랑처럼 서툴더라도,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진심으로 배워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살아내는 가장 ‘나다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