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하다

사람을 대할 때 지키는 것들

by 싱긋

<따로 또 같이 쓰는 주제>

사람을 대할 때 지키는 것들



오늘도 사람들을 스친다. 집 밖만 나가면 어딜 가나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칠 때가 많지만 가끔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반가울 때가 있다. 폐업, 폐교, 지방 소멸화, 인구 급감... 10년 뒤에도 이 길 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을까. 괜한 걱정이 들 때면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광경이 더없이 귀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할 때 소중하게 여기려 노력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 주어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지고 지금 여기에 이른 그들 모두가 가련하다. 내가 그랬듯 저들도 수많은 기쁨과 슬픔, 환희와 고통의 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오늘도 최선을 다해 웃고 울며 버티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어떻게 우주를 품은 경이롭고도 유일한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나는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전부라는 착각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 애쓴다.



상상은 불현듯 그들의 미래로 번져간다. 현재 어떤 상태이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씨앗이 무서운 이유는 자라서 무엇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는 내일의 씨앗이다.



게임하며 놀기만 하는 대책 없는 아이들. 얼굴이 찌푸려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 속 주인공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무례하고 불쾌한 인간들.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 안에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걸 믿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저들이 지금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 거라 악담하듯 속단하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부모님 빚보증에 중2병까지 겹쳐 흙수저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다. 수능 7등급, 반 석차 49명 중 43등. 그는 중학생 때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가장 가기 싫은 배달지에 가게 된다. 여자중학교였다. 그곳에서 피자를 반기며 환하게 웃고 있는 초등 동창을 마주친다.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친구를 보며 자신은 뭘 하고 있는 건지, 충격을 받는다. 이후에는 제 발로 해병대에 들어가 지옥을 맛보곤 세상일이 다 해 볼 만해진 사람이 된다.



스쿠버다이빙 강사, 아프리카 르웬조리 등정, 히말라야 텐트 피크 등정, 사하라 사막 마라톤 완주, 철인 3종 경기 완주, 45개국 세계 일주 등 그는 닥치는 대로 도전하는 사람이 됐다. 스물여섯에 삼성전자 중동 총괄에 입사, 그러나 하늘을 날겠다며 돌연 사표를 쓴다.



미연방항공국의 사업용 조종사 자격을 취득하고 45개국 200개 도시를 여행하며 파일럿으로 세계를 넓힌다. 그는 《행동력 수업》의 저자이자 세바시 조회수 수백만의 강연자, 오현호. 인간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 그의 무한도전은 놀랍기만 하다.





껄렁껄렁 싹수가 없어 보이는 청소년을 볼 때면 오현호가 떠오른다. 당장의 모습은 엉망이고 뒤처져 보인다 해도, 그것이 그 아이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잠시이고 일부이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삶을 발견하고 방향을 바꿀지 알 수 없다.



외양에 속지 않으려 한다. 내 눈엔 미숙해 보여도, 언젠가는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현호가 그 증거다.







여기 또 나를 사로잡은 변화의 증인이 있다.

임종소 할머니는 1944년생으로 70대 초반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척추협착증이 심각했다. 의사로부터 근력운동을 하면 통증을 줄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날로 체육관을 찾아 PT 등록을 한다. 주 3회 한 달을 운동했더니 통증이 줄었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자녀에게 손 벌리기가 미안했던 할머니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PT 비용을 마련했다고 한다. 6개월 만에 보디빌더 대회 참가 권유를 받아, 그동안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올해로 82세, "헬머니" 그녀는 말한다.

"돈이 아까워서 PT 같은 걸

못 받는 사람들 보면 안타까워요.

아낄 게 아니고 자기 몸에 투자를 해야 해요.

건물을 지어도 20~30년이면 상한 데가

많으니까 리모델링하잖아요.

사람도 거의 60~70년을 써먹었으면

고장이 안 날 데가 있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관리에 투자가 필요합니다."



휠체어를 타던 할머니는 82세 몸짱 헬머니로 변신했다.
임종소는 나이 들면 근육이 줄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편견을 단숨에 깨주었다. 그녀의 현명한 투자와 꾸준한 실천은 자신의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도 활짝 피어나게 했다.




그들을 보며 깨닫는다. 몇몇 특별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잠든 힘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다.



희망의 증인들이 외친다.

"할 수 있다!"

그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돌아와

거울처럼 나를 다시 비춘다.

그들이 해냈듯

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을 존귀히 여길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기사나 기록일 뿐 아니라,

가슴 설레는 꿈이 되고 가볼 만한 길이 된다.

그들을 통해

가능성을 배우고, 미래를 본다.




사람을 현재의 모습만으로 단정하지 말자.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 안에서 어떤 열정이 남몰래 숨어 있는지,

언제 다시 불꽃으로 솟아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그의 미래를 기대하고 믿어주자.



눈부신 성취를 따라가자는 게 아니다. 가능성만으로 사람이 귀한 것도 아니다. 변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가능성은 그 존귀함을 증명하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그저 모든 사람 안에 변화의 불씨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사실도 기억하며 그들을 존귀한 그대로 바라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 마음은 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돌아올 테니 절대 이타적인 이유로만 권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나도 충분하다.



우리는 서로의 존귀함 속에

그렇게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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