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짜릿함
<따로 또 같이 쓰는 글>
내가 좋아하는 단어
글을 쓰다 깨달았다.
"발견"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걸.
흐릿하고 정체 모를 장면 속에서
어떠한 형체가 서서히 윤곽을 나타낼 때.
익숙한 일상 속 오래된 것들이
낯설게 반짝이며 드러날 때.
세상의 숨겨진 규칙을 적용해 바라보면
매일의 풍경이 실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음을 알아차릴 때.
발견은
무엇보다 짜릿하다.
보물 찾기를 하다 신세계를 만난 듯
쾌감이 터진다.
내면의 지형이 바뀌고
시야가 열린다.
나에게 발견은 오래된 필름 사진을 현상하는 일처럼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마주하는 만남이기도 하고, 찰나에 지나가는 상대의 미소를 마음에 담는 노력이기도 하다. 곁에 있던 사람의 엉뚱한 면모에 대한 놀라움이며, 무지했던 분야의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향한 감탄이기도 하다.
신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 숨어 있음을 알기에 발견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발견을 반복하며 매일 더 어제와 멀어지게 도와주는 기대감이 좋다.
드물게 발견의 순간을 기록으로 포착할 때가 있다.
아래는 반짝했던 생각들을 끄적여둔 것들이다.
조금 튀는 옷차림을 한 여성이
카페 앞을 지나간다.
쨍한 코발트블루 셔츠에
베이지색 초핫팬츠.
종아리까지 오는 갈색 부츠.
내 눈에는 기이한 조합이다.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보면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무척이나 당당하다는 것.
멋지고 예쁜 자신을 데리고 다니니
절로 가슴이 펴지는 걸까.
어찌 됐건 그 속에 깃든
자신감과 믿음이 부럽다.
설사 그 모습이 결핍을 감추려는 방어기제일지라도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연습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나다운 내가 되는 길 위에 있는 거니까.
표현은 자신감으로 붙고,
자신감은 현실을 만든다.
오늘 내 자신감은 어디에서 드러났을까?
화장실에 갔다가 손을 씻고 보니
핸드타월용 휴지가 없어
변기 옆에 화장지를 풀어 물기를 닦았다.
휴지 조각이 손에 지저분하게 달라붙는다.
워낙 얇아서 물에 젖어 찢어진 것이다.
나는 어떨까?
조금 묻은 물 정도는 툭툭 털고 말려버림 될 텐데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긁힌다면
내 두께가 문제인 건 아닐까?
작은 시련이나 실패에도 쉽게 좌절한다면
내가 너무 얇은 인간인 건 아닐까?
덜 말리고 잤더니 머리가 신이 났다.
한껏 부풀어 올랐다.
차마 이대로 놔둘 수가 없어
오랜만에 고데기를 꺼내본다.
머리카락을 열로 지진 뒤,
스타일을 내기 위해
원하는 모양으로 머리를 잡은 채 기다린다.
열기가 식는 동안
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열정적으로 달리던 시기가 지나고
잠시 한숨 돌리는 틈에서,
미지근한 일상 속에서,
지쳐서 주저앉은 바닥 위에서,
진짜 인생은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단상이
두고 볼 수 있는 흔적이 된다.
질문으로 남는다.
나에게 발견은
일상에 생기로 불어온다.
좋아하는 단어를
더 아끼고
가까이하면서
매일을 더 좋아하는
내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