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지는 날
아직 사랑중인 채로 살아도 괜찮을까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그런데도 하루는 흘러가고 있다는 걸.
특별히 용기를 낸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 것도 아닌데
아침이 오고,
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예전에는
사랑이 끝났으니
삶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이 아직 거기 있는데
어떻게 앞을 볼 수 있냐고
스스로를 붙잡고 묻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시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살아지고 있었다.
아직이라는 감정을 품은 채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웃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지치기도 하면서.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이
하루의 모든 결정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마음은 여전히 뒤에 남아 있는데
몸은 자꾸 오늘로 향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직 사랑중이면
아직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 같았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 마음을 배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직 사랑 중이라는 건
멈춰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마음을 안고도
살아낼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로도
사람은 하루를 살아간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삶의 본능에 더 가깝다.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이
처음에는 서글펐고,
나중에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나를
사람들은 묻는다.
이제는 괜찮아졌냐고,
이제는 다시 시작할 수 있겠냐고.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질문에 급히 답하지 않는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살아지고 있고,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이미 오늘을 지나고 있으니까.
아직 사랑 중인 채로도
나는 충분히 숨 쉬고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했던 내가
함께 사라질 필요는 없었다.
그 마음은 아직 남아 있지만
그 마음 때문에
삶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감정의
무언가를 결론 내리지 않는다.
아직 사랑 중인 나를
어딘가로 밀어내지도 않고,
억지로 다음 단계로 데려가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말해본다.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지는 날들이 있다.
그건 포기가 아니라
삶이 나를 놓지 않았다는 증거다.
아직 사랑 중이어도 괜찮다.
아직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이 끝났어도
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이 연재를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에게도
같은 말을 남기고 싶다.
지금 당신이
아직 어떤 감정 한가운데 서 있더라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더라도,
그 상태 그대로
하루를 살고 있다면
이미 충분하다.
아직 사랑 중인 채로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생각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