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지는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 하루가 지나가 버릴때

by 그릿 grit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다시 시작하지 않았는데

하루가 끝나 있었다는 걸.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고,

마음을 정리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각오를 한 것도 아닌데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그냥 살아냈다는 사실.


예전 같았으면

그건 실패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고,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고,

여전히 ‘그다음’을 시작하지 못한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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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는 건

멈춰 있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고,

사람들과 필요한 만큼 말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견디고,

밤이 오면 다시 하루를 접는 일.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도 있고,

가끔은 설명되지 않는 외로움도 있고,

문득 스치는 얼굴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루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사랑이 끝난 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다음은 언제 시작해야 하지?”

하지만 삶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앞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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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선택을 하지 않은 날에도

시간은 사람을 끌고 간다.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지는 날이 있다는 건,

아마도 마음이

조금씩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아직 사랑이 남아 있어도,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도,

아직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해도

우리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음 날을 맞이한다.

그게

생각보다 큰 일이라는 걸

요즘에야 알겠다.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게 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예전의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나아가고 있다고 느꼈다.

잊어야 했고,

정리해야 했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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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버텨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고.


아직 사랑 중이라는 말은

언제까지 이 마음을

붙잡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다만

아무 결론 없이도

오늘을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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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계속 살아지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스스로도 모르게.


오늘도

아무것도 새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건넌 당신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지금 이 속도도
충분히 삶이다.


—그릿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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