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사랑하고 , 사별하고 , 살아남은 이야기

by 그릿 grit

나는 사랑했다.

아주 서툴게,

그러나 진심으로.

무서울 줄도 모르고,

잃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좋아했고,

그 사람이 있는 내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어른이 되었고,

부모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 모든 책임 앞에서도

사랑만은 여전히

따뜻한 방향으로 흐를 거라 믿었다.


그때의 나는

사랑이 이렇게까지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사별은

누군가를 잃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별은

세상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혼자만

다른 시간에 남겨지는 일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살아야 하니까,

아이를 위해서라도 버텨야 한다고.

하지만 상실은

‘견디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매일 아침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었고,

밤이 되면

이미 없는 사람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유가족이 된다는 건

슬픔을 오래 붙잡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유가족이 된다는 건

슬픔을 충분히 말하지 못한 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울고 있으면

언제까지 그럴 거냐는 시선을 받게 되고,

울지 않으면

이제는 괜찮아진 사람으로 분류된다.

어느 쪽이든

남겨진 마음은

항상 설명이 부족하다.


이 글은

사별을 이겨낸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상실을 ‘극복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다만,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하루씩 배우고 있을 뿐이다.

아이를 안고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날이 있었고,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던 밤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침은 왔고,

나는 다시 일어나야 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연재는

슬픔을 꺼내 보이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이 연재는

사별 이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아주 조용히 증언하는 이야기다.

유가족이 된다는 건

강해지는 일이 아니라,

무너진 채로도

하루를 넘기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아직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면,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당신이 아직 울고 있다면,

그건 약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당신을 일으켜 세우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으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사랑했고,

사별했고,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함께 울어주는 문장을 쓰는 사람으로

여기 앉아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오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곁에

조용히 앉아 있겠다.

— G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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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살아야 해서 버텼고,

이제는 살아 있어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