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사랑했다
친구에게는 네 살 많은 오빠가 있었다.
우리는 참 자주 어울려 지냈고,
그만큼 그 집에도 자주 갔다.
방학 때면 주말마다 친구네 집에 모여
밤을 새우곤 했다.
수다를 떨고, 라면을 끓여 먹고,
TV 소리를 줄인 채
새벽까지 영화를 보던 시간들.
그날도 그런 밤 중 하나였다.
오빠의 친구들이 놀러 온 날이었다.
거실에는 낯선 남자들이 몇 명 더 있었고,
떡볶이를 시켜 놓은 채
각자 다른 자세로 바닥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
나는 그저 친구 집에 놀러 온 고등학생이었고,
그들은 친구 오빠의 친구들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눌 이유도,
굳이 말을 걸 이유도 없는 사이.
그런데 그날,
그 사람을 처음 봤다.
처음부터 조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말이 많진 않았지만,
웃음이 먼저 나오는 사람이었다.
누가 농담을 던지면
가장 크게 웃는 사람,
괜히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봐
쓸데없는 말 하나 더 얹는 사람.
“야, 떡볶이 시킨 사람 누구야.
이건 거의 떡볶이계의 배신인데?”
그 말 한마디에
거실이 한 번 더 웃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쪽으로
자꾸만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사람.
그날도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자꾸 말을 걸어왔다.
“너 학교 어디 다녀?”
“이 시간까지 안 자도 돼?”
“라면 말고 치킨은 싫어?”
질문은 가볍고
말투는 장난스러웠다.
어색함을 밀어내는 데
전혀 힘을 쓰지 않는 사람처럼.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괜히 웃게 되고,
괜히 대답을 더 하게 됐다.
그러다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번호 알려줄래?”
너무 자연스러워서
장난인지 진심인지
잠깐 헷갈릴 정도로.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그는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 부담 가지라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너랑 얘기하는 게 재밌어서.”
그 말이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내 번호를
자기 휴대폰에 천천히 눌렀다.
그는 나보다 네 살 많았다.
나는 고등학생 1학년,
그는 대학생.
어른들 눈에는
굳이 이어질 이유도 없는 관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나이 차이가 무섭지 않았다.
그 사람 옆에 있으면
내가 어리다는 느낌도,
모자라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대신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하루의 일부가 되었다.
메시지를 주고받고,
전화를 하고,
자주 보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가 되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구 오빠의 친구에서
나의 사람이 되기까지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우리는 그렇게
웃음부터 먼저 쌓아가며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서로의 마음에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이렇게 시작된 사람이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했고,
또 가장 깊이 울게 한 사람이 될 줄은.
—그릿 Gr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