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의 계약
첫사랑이 감각으로 남았다면
그다음 사랑은 말로 남았다.
우리는 감히
미래를 입에 올렸다.
영원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들고
서로의 시간을 담보처럼 걸었다.
"너밖에 없어"
"내 인생의 마지막은 너야"
어릴 땐 그런 말을
가볍다고 생각했다.
책임지지 못할 문장이라고.
그런데 사랑을 하고 보니
그 말은 이상할 만큼 쉽게 나왔다.
사랑이 깊어서가 아니라
불안이 깊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물었다.
"나 사랑해?"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해 줘.
그 말이 있어야
안심이 됐다.
확신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야
마음이 조용해졌다.
내 , 인생의 마지막 여자는 너야
우리는 사랑을 말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떠날지도 모른다는 예감,
언젠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래서 미래를 붙잡아두려 했다.
사랑은 지금인데
우리는 자꾸
나중을 요구했다.
그때 조금만 솔직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너를 사랑해.
하지만 노력해야 할지도 몰라.”
영원을 약속하는 대신
오늘을 지키겠다고 말했다면
우리의 온도는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이제야 이해한다.
사랑은
미래를 장담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그래도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그 약속도
가볍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 무게를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