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콩깍지

달콤함의 중독

by 그릿 grit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우리는

시작했으면서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나는 대학교에 합격해 놓고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졸업까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짧은 공백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여백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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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생활을 경험한다는 명목으로

작은 일터에서 서툰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고,

어느새 오빠는 농협 계약직으로 취직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같은 지역에 있었기에

퇴근 후 종종 만났다.


거창한 데이트는 아니었다.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시간.

그 시절의 나는

‘빵순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빵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했다기보다

빵집 앞에서 멈추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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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가끔

점심시간을 이용해

내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왔다.

양손 가득 빵을 들고.

“같이 일하는 분들이랑 나눠 먹어.”

그 말이

왜 그렇게 설렜는지 모르겠다.

빵집의 거의 모든 종류를 사 와

종이봉투를 한가득 건네던 그 모습이

내게는 사랑의 증거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다정함이었을까,

아니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그 다정함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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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냄새처럼,

아무 경계 없이.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친절들이

조용히 반복되면서.

나는 그 반복을

영원으로 착각했다.

콩깍지가 씐다는 말은

결점을 못 본다는 뜻이 아니라

달콤함이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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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달다.

많이 먹으면 물리지만

먹는 동안에는 멈출 수 없다.

사랑도 그랬다.

그는 나를 특별하게 대해주었고

나는 그 특별함에 중독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를 사랑했다기보다

그가 나를 사랑해 주는 장면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달콤한 순간은

의심을 녹인다.

그리고 녹아내린 자리에는

분별력이 먼저 사라진다.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 아니라

서로에게 취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취해 있는 사람은

위험을 계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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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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