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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수많은 '바틀비'가 있다

I prefer not to. 필경사바틀비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필경사는 복사기가 없던 당시에 필사를 하고 글자 수대로 돈을 받던 직업이다. 초로에 접어든 나는 변호사로 법률문서 전담 필사원 세 명을 두고 있다.

월스트리트 00번지 2층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필경사는 터키,앤 니퍼스, 진저 너트인데 이름이라기보다는 각자의 개성이나 인격을 상징하는 별명이다. 터키는 키가 작고 뚱뚱한 영국인인데 낮 12시가 지나면 에너지가 지나치게 넘쳐서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다. 잉크 얼룩은 주로 오후 시간에 작성에 문서에 집중되었고, 걸핏하면 흥분하여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앤 니퍼스는 누르끼리한 안색, 구레나루를 지닌 25살 정도의 청년 필경사로 지나친 야심 때문에 불필요한 분노를 수시로 표출한다. 하지만 깔끔한 스타일과 정확한 필사로 그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점수를 받는다. 진저너트는 12살 소년으로 자잘한 심부름이나 청소를 주로 맡는데 터키와 니퍼스가 주문한 과자와 사과를 조달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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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사무소의 일이 늘어남에 따라 4번째 필경사를 고용했는데 그가 바로 바틀비다. 창백하리만큼 말쑥하고 가련하리만치 점잖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그는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사람처럼 놀라운 분량을 필사했다.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필사했다. 간혹 일을 서둘러야 할 경우는 4명이 함께 앉아 필사된 복사본들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해야 했다. 바로 그날 바틀비를 불렀는데 매우 상냥하면서 단호한 목소리가 그의 자리에서 들려왔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생전 처음 놀람과 당황스러운 감정을 경험한다. 반복적인 요구에도 기계적으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진저너트가 나오지 않은 날 급한 일로 우체국에 보낼 서류를 바틀비에게 부탁하는데 여전히 바틀비의 입에서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이유도. 구체적인 설명도 없는 단 한마디의 간결한 말.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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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바틀비는 필경사로서의 직무를 거부한다. “저는 필사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의 선언이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을 택하면서 자신의 자리만 지키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바틀비가 숙식의 장소로 자신의 사무실을 이용한다는 사실. 더 이상 바틀비를 사무실에 둘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약간의 돈을 주며 엿새의 시간을 줄 테니 새로운 직업과 거처를 찾으라고 말한다. 약속 날짜가 되었지만 바틀비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붙박이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 안에서 분노한 태초의 아담이 바틀비와 관련해서 나를 유혹했지만 ‘나와 바틀비는 모두 아담의 아들이 아닌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생각으로 바틀비를 받아들이려 결심했다. 바틀비와 나는 영겁의 세월부터 이런 관계가 예정된 것일 수도 있으니 나는 그에게 직업과 숙소를 주어야 한다는 고결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사무실에 드나드는 동료 변호사들이 바틀비의 무례함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자 결국 바틀비를 남겨두고 자신이 사무실을 옮기기로 작정한다.


새 사물실에서의 삶은 바틀비를 잊어버릴 수 있어서 편안하였는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와 ‘당신이 두고 간 낯선 사람을 책임져야 합니다. “는 통보를 하자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인다. 바틀비를 찾아가 사무실에서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지만 ”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변경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는 대답을 듣게 되고 바틀비의 일에서 손을 뗄 무렵 바틀비가 주거 침입죄로 툼스 구치소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바틀비는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태도가 차분하고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기에 감옥 안, 안마당을 자유로이 산책할 수 있었다. 바틀비와의 면담을 위해 구치소를 방문하는데 바틀비는 “나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과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바틀비는 구치소 음식을 일절 거부한다.

며칠 뒤 다시 구치소를 방문하였을 때 굉장한 두께로 둘러친 벽. 석조 건물의 이집트적인 특징의 건물. 아래에는 푹신한 그러나 감금된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새들이 떨어뜨린 잔디 씨가 알 수 없는 마법에 의해 갈라진 틈새로 돋아난 것이다. 그곳에 쇠약한 바틀비가 누워있었다. 다가가 보니 멍하게 눈을 뜬 채로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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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의 전직은 워싱터 사서 우편물 계의 하급 직원이었다고 전해진다. 사서(死書). 수취인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반송되어온 우편물은 매년 대량 소각된다. 창백한 표정의 바틀비는 우편물 사이에서 반지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지가 끼워져야 했을 손가락은 이미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자선을 베풀어 발송한 지폐가 나오기도 하는데 정작 그 지폐를 만져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 뒤늦게 희소식을 알리는 편지가 섞여있기도 한다.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한 순간에 죽음으로 치닫는다. 바틀비는 그 일을 감당해야 했던 하급 직원이었다.


모비딕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 바틀비 대사의 대부분은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이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일을 하지 않겠다거나, 안 한다는 표현이 아닌 ‘하지 않음’이라는 가능성을 택한다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에 의하면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다. “는 바틀비의 말은 “존재하거나 행동할 잠재성”과 “존재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을 잠재성” 사이에 있는 일종의 ’ 비무장 지대‘를 개방하는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의 거부는 단순하고 기계적인 일에의 거부, 필경사 이전의 직업이었던 사서의 역할에 대한 뒤늦은 거부를 품고 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에서 업무 외적인 일이 아닌 업무적인 일과 관련하여 피고용인이 “안 하는 편을 선택한다:”는 말을 한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용인은 피고용인의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부된 노동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삭막한 빌딩 숲. 바틀비가 근무하던 작은 공간, 숙식을 해결하던 공간도 비좁은 사무실의 틈이다. 바틀비가 택한 죽음의 장소는 높은 벽 아래 연초록 잔디가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바틀비는 삶 대신 차라리 죽음을 택하였지만 바틀비가 생의 마지막 장소로 택한 곳은 생명이 움트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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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짧은 소설이지만 멜빌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바틀비의 묘한 거부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짧은 글임에도 다양한 함의와 해석이 내재되어 있는 필경사 바틀비는 미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고 2001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고립과 소외. 산업화된 일터의 본질과 계급, 노동운동, 허무주의와 병리적 정신 질환 등 다양한 논의에 사용될 수 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공간적 배경이 되는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는 '벽의 거리'라는 뜻으로 네덜란드 이민자들을 인디언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방벽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이 거리는 동쪽 이스트강에서 서쪽의 허드슨 강까지 맨해튼 남단을 동서로 가로지른다고 한다.


월(wall)로 둘러싸인 도시. 바틀비는 쉬지 않고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기계적으로 미친 듯 일하고 어느 순간 '멈춤'을 통보한다.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권리... 바틀비가 선택할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권리였다.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바틀비의 목소리가 수많은 월(wall)을 넘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자체로서 일체적인 완전함을 갖춘 섬과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체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죽음은 나를 축소시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속해 있는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조종(죽음을 알리는 종)이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입니다.

- 존 던 < 묵상록>에서 -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 본체의 일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의 노동은 나를 축소시킵니다....

'죽음'대신 '노동'을 넣어도 무리가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삭막한 도시 어디선가 수많은 바틀비들의 노동이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벽들이 수많은 바틀비를 가두고... 수많은 바틀비들은..... 여전히 일을 하고....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고 들리 듯 말 듯 중얼거리고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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