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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레너건 / 2014년 맨 부커상 수상작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리처드 플레너건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전쟁포로로 버마 철도 건설현장에서 복역했던 아버지의 참담하고 끔찍한 전쟁 참상에 대한 기록이다. ‘죽음의 철도’라고 불리는 버마 철도는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자 만든 길이 415km의 철도로 군인과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됐다.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체험을 듣고 자란 리처드 플래너건은 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 12년간 집필에 매달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다섯 개의 다른 판본을 썼다고 한다.


왜 태초에는 항상 빛이 있는 걸까? 도리고 에번스에게 최초의 기억은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교회 안으로 햇빛이 쏟아지던 모습이었다. 나무로 지은 교회, 눈부신 빛, 자신을 반기는 그 초월적인 빛 속을 아장아장 들락거리다가 여자들의 품에 안기던 자신, 그를 사랑하던 여자들, 바다에 들어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네게 축복이 깃들기를. 어머니가 그를 안았다가 다시 놓아주면 말한다. 네게 축복이 깃들기를, 아가야

- 먼 북으로 가는 길 - 첫 페이지 시작 부분


탄생의 순간 누구나 빛을 꿈꾼다. 이 순백의 영혼에게 평생 동안 빛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빛의 아기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 아기를 안아보려 하고 온갖 덕담을 하며 아기가 하는 모든 행동이 천재처럼 여겨지던 시절... 그 시절 사람들은 빛의 세계를 맛본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은 희미해지고 우리가 빛의 세계에서 살았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스스로가 빛의 아이들이었고 빛의 아기들의 부모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첫 페이지는 빛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며 우리의 기억을 깨어나게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 라인에서 살아남아 잘 나가는 외과의사이자 화려한 전쟁 영웅이 되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도리고 에번스가 전쟁에 출정하기 전 우연히 만난 자신의 젊은 숙모 에이미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기억, 철도 건설 현장에서 일본군 전쟁 포로로서 겪어야 했던 잔혹하고 비참한 삶에 대한 기억이 이 소설의 주된 모티브다.


도리고 에번스는 매일 아침 노역에 동원 가능한 오스트레일리아인 포로들의 수를 일본인 장교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일본인 장교와 노역에 동원될 포로를 놓고 대립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노력은 실패했다.

리처드 플래너건은 흔한 전투 장면 하나 없이도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끊임없는 노역, 죽어가는 사람들, 이기심과 배신, 광기 어린 예술에 대한 욕구, 원초적인 본능만이 살아 숨 쉰다. 극한 환경에서 예술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견디는 수단이 된다. 일본인 장교들은 하이쿠를 주고받으며 일본 정신을 찬양하고 도리고는 키플링을 암송한다. 혀가 퉁퉁 붓도록 나팔을 부는 이,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기록화를 남기는 이도 있다. 즉흥적인 스토리의 단막극을 공연하며 순간의 고통을 잊으려는 이들도 있다.


제목의 ‘먼 북’(deep north)은 철도 공사 현장을 뜻하는 동시에 아득하게 먼 곳을 상징한다. 우리의 현실과는 아득히 먼 곳, 동떨어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야만이 시시각각 자행되는 곳이다. 그 잔인함 속에서 일본인 장교들은 아름다운 언어들의 조합인 하이쿠를 암송하며 포로의 목을 벤다. 리처드 플래너건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 일본의 전통 시 하이쿠를 인용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벌 한 마리

모란에서

비틀비틀 나온다./바쇼


바닷가

그 여자에게서 어스름이 쏟아져 나와

저녁 파도를 가로지른다./잇샤


이슬의 세계

모든 이슬방울 안에는

투쟁의 세계 /잇샤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

그래도. /잇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의 매력은 바로 4단계로 구성된 하이쿠와 소설의 진행 흐름을 긴밀하게 연결 짓고 있다는 점이다. 바쇼의 하이쿠 ‘벌 한 마리 모란에서 비틀비틀 나온다’는 전쟁이 끝난 후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은 도리고 가 에이미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허기로 숱한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는 것을 상징한다. 도리고 자신이 벌 한 마리가 되어 꽃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지만 정작은 더 허기지고 외롭다는 것을 암시한다.

잇샤의 하이쿠 ‘바닷가 그 여자에게서 어스름이 쏟아져 나와 저녁 파도를 가로지른다.’는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동백꽃을 머리에 꽂은 여자 에이미(나중에 숙부의 두 번째 부인이란 사실을 알게 되지만)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어스름이 쏟아져 나오는 해변에서 이미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모든 단계들을 건너지만 참전과 동시에 서로의 뒷 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이슬의 세계 모든 이슬방울 안에는 투쟁의 세계’라는 잇샤의 하이쿠가 소개된 장에서는 전쟁 포로로서의 처참한 상황, 승자에게는 이슬이라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슬 안에 갇힌 패자에게는 목숨을 거는 끝없는 투쟁의 연속임을 보여준다. 모든 이슬방울 안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투쟁의 과정을 섬세한 언어로 기술하고 있다.

잇샤의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 그래도.’는 전쟁 후 고국에 돌아와 참전용사로서 명예를 얻게 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여인과의 결혼, 의사로서의 성공, 이른바 세속의 것들을 다 거머쥐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뜨거운 햇살 한 줌이면 즉시 소멸해버릴 이슬의 세상에 불과함을 암시한다.


도리고는 에이미와의 재회를 원치 않는 아내의 거짓 정보로 인해 에이미가 호텔 화재로 이미 죽었다 생각하고, 에이미 또한 도리고 가 전쟁 중 포로로 잡혀 생사를 확인할 수 없어 그를 잊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어진다. 두 사람은 인파가 몰리는 다리 위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다. 양 손에 아이 둘을 데리고 걸어오는 여인을 에이미와 상당히 닮은 여자일 것이라 생각하고 다리 끝까지 무심하게 걸어가는 도리고. 에이미는 방송에서 승승장구하는 유명인사인 도리고 에번스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암까지 걸린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스쳐 지나간다. 다리 끝에 이르러서야 도리고는 인파 속에서 에이미를 찾기 위해 뒤돌아보는데 에이미의 흔적을 찾지 못한다.


동백꽃을 머리에 꽂은 여자가 낡은 서점 책꽂이 앞에서 책을 고르는 도리고 앞에 다가서고 둘 사이에는 햇살에 비친 먼지들이 유영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리 위에서 서로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잔상에 남는다. 소위 두 사람의 관계는 세속의 눈으로 보면 숙모와 조카의 불륜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호텔을 경영하며 지역구 의원이었던 숙부는 이 모든 관계들을 알면서도 처음엔 모른 척한다. 이미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서 거짓 정보를 흘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게 막는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우리에게도 먼 북 (deep north)은 존재할 것이다. 먼 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서 철도를 놓는 힘든 여정만큼이나 고단한 과정일 것이다. 저자가 ‘멀다’는 개념을 ‘깊다’라는 언어로 적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먼 북으로 가는 넓은 길도 아닌 좁은 길을 우

리는 걷고 있다. 먼지 날리는 서점의 책꽂이 앞에서 마주친 인연을 마음에 품으며 투쟁의 과정을 견디고 ‘그래도’라는 희망을 품으며 도리고 에번스가 지난한 삶의 과정을 걸어왔듯이 우리도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 그래도’를 품고 저마다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일들. 그것이 사랑이든 사랑 이외의 것이든...


잇샤의 하이쿠처럼 '이슬의 세계, 모든 이슬방울 안에는 투쟁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일 뿐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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