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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을 치다

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을 치는 갯민숭달팽이처럼

스스로 목을 치다.

기생충 없애려 스스로 목을 치는 달팽이

갯민숭달팽이(Elysia cf. marginata)가 스스로 목을 잘라낸 뒤 머리와 몸통의 모습. 머리에선 다시 몸통이 자라났다. 하지만 남은 몸통은 몇 달은 살지만 결국 부패했다.

일본 나라 여성병원의 요이치 유사 교수 연구진은 9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자르고 나중에 머리에서 다시 몸이 재생되는 모습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더듬이가 달린 머리는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움직이고 먹이까지 먹었고 심지어 노폐물도 제거했다. 1~3주가 지나자 심장을 포함한 몸통이 다시 자라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몸통 역시 목이 없어진 상태에서도 심장이 계속 뛰었지만 몸통은 결국 썩기 시작했다. 사야카 미토 연구원은 “머리는 뇌와 먹이를 씹는 치설(齒舌)처럼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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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 연구원은 “갯민숭달팽이의 머리는 몸통과 분리되기 전이나 후에도 해초를 먹고 엽록체가 녹색으로 변했다”며 “달팽이의 소화샘은 머리를 포함해 몸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덕분에 몸통과 분리된 뒤에도 머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갯민숭달팽이(Elysia atroviridis) 160마리를 자연 상태의 수명인 2년까지 관찰했는데 실험실 달팽이 15마리 중 5마리와 야생 달팽이 145마리 중 3마리가 스스로 목 아래 몸통을 잘라냈다. 야생 달팽이 39마리는 이동에 쓰는 꼬리 부분처럼 더 작은 부분을 잘라냈다. 도마뱀 같은 일부 동물은 천척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꼬리 같은 몸의 일부를 잘라낸다. 연구진은 갯민숭달팽이도 같은 행동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천적처럼 몸통을 찔렀지만 달팽이는 이런 공격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목이 잘린 달팽이 42마리 모두 몸에 물벼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구진은 최소한 이 달팽이 종은 몸 안의 기생충 때문에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스로 목을 자르는 이유가 기생충을 떨쳐내려는 것이었다면 대가가 너무 컸다. 나이 든 달팽이는 몸통을 잘라내고 머리가 살아남지 못했다. 연구진은 어리석은 판단처럼 보이지만 나이 든 달팽이는 어차피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번식을 막는 기생충을 없애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 이영완 과학 전문 기자의 글 일부 인용


몸에 생긴 물벼룩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치는 달팽이라니..

우리나라 전통 사극에서 망나니들이 칼춤을 추며 목을 치는 장면과는 다르다. 달팽이들은 스스로 목을 친다. 도마뱀이 천적을 만날 때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나 달팽이가 몸 안의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몸을 버린다는 것은 생소하다.

정말 핵심이 되는 부품이 있는 곳은 제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 손절하는 것이 에너지 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결단이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냉철한 계산 주의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달팽이가 살아남기 위해 몸을 버리는 과정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젊은 달팽이가 아닌 나이 든 달팽이도 기생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치지만 머리는 끝내 살아남지 못하였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 기생충에게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히며 고통받느니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느림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달팽이...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주어진 생을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목을 치며... 기생충에 감염된 몸을 미련 없이 버린다. 사람의 몸에도 수많은 것들이 기생한다. 생물학적 의미로서의 기생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 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의 기생이다.

용감하지 못하다. 내 안에 기생하는 낡은 것들, 타협하게 하고 비겁하게 하고 부끄럽게 하는 낡은 것들의 기생을 나는 너무도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스스로 목을 치지 못한다. 목 잘린 달팽이 사진을 보며 무엇이든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만 있으려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달팽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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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 쟈크 프레베르 -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달팽이 두 마리가 조문하러 길을 떠났다네

검은 색깔의 껍데기 옷을 입고

뿔 주위에는 상장을 두른 차림이었네

그들이 길 떠난 시간은

어느 맑은 가을날 저녁이었네

그런데 슬프게도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봄이 되었다네

죽었던 나뭇잎들은

모두 부활하여

두 마리 달팽이는 너무나 실망했네

하지만 해님이 나타나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네

괜찮으시다면 정말 괜찮으시다면

여기 앉아서 맥주 한잔 드시지요

혹시 생각이 있다면

정말 그럴 생각이 있다면

파리로 가는 버스도 타보시지요

오늘 저녁 떠나는 버스가 있으니까요

여기저기 구경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제 상복은 벗으세요.

내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지요

상복은 눈의 흰자위를 검은빛으로 만들고

우선 인상을 보기 싫게 하지요

죽음이 사연들은 무엇이건

아름답지 않고 슬픈 법이지요.

당신들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

그러자 모든 동물들

나무들과 식물들이

노래 부르기 시작했네

목이 터져라 노래했네

살아있는 진짜 노래를

여름의 노래를 불렀네

그리고 모두들 마시고 모두들 건배하네

아주 아름다운 밤이었네

그러고 나서 달팽이 두 마리는 집으로 돌아갔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감동했네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은 아주 행복했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그들은 조금씩 비틀거렸네

하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

달님이 그들을 보살펴주었네


쟈크 프레베르의 < 장례식에 가는 달팽이들의 노래 >는 죽음과 슬픔의 겨울과 기쁨과 생명의 봄을 대비시킨다. 죽은 나뭇잎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길 떠난 달팽이. 도착하였을 때는 죽은 나뭇잎이 모두 부활하여 환희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실망한 그들에게 해님은 “ 상복은 벗고 당신에게 맞는 색깔, 삶의 색깔을 다시 입으세요.”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진짜 여름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모두 함께 건배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두 마리 달팽이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아주 행복했다...

자크 프레베르의 “당신에게 맞는 삶의 색깔을 입으라”는 말은 갯민숭달팽이가 스스로 목을 치는 행위에도 들어맞는다. 기존의 것들,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내려두고 다시 새로운 삶의 색깔을 입어야 한다는 조언처럼 들린다. 세상엔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세상을 알려고 하기보다 내 안에 꾸역꾸역 기생하는 낡은 것들을 먼저 쳐내야 할 때임을 갯민숭달팽이에게서 배운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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