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씨즐 SIZZLE 12화

밈(Meme)

아버지는 한 권의 책이었다. 오래도록 아껴 읽고 싶었던 책. 그러나 오래 읽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책을 읽던 스무 해 봄날의 기억은 50페이지 언저리에서 멈춰버렸다.

부모로부터 생물학적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내 몸 DNA 이중 나선 어딘 가에는 아버지가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슨이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언급한 문화적 유전자 ‘밈’은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되어 세대를 초월해 진화한다고 한다. 햇살 내리쬐던 봄날, 서고에서 나는 아버지의 밈을 복제하고 있었을 것이다.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 해가 비쳐 들면 책들은 나른한 기지개를 켰고 펼쳐진 책 위로 조각난 햇살이 머물렀다. 햇살을 모아 책갈피로 삼았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풍경은 늘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 앞의 내 모습이다.


아버지는 책을 사랑하셨다. 전공은 영문학이었지만 책에 빠진 그는 사서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는데 아마도 그 시대엔 제1세대 사서교사였을 것이다. 그때 만해도 도서관의 모든 업무를 수작업하던 때라 어떤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던 시대였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가 수업을 접고 사서교사로만 근무하면서 학교 도서관은 내게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

어른 키보다 훨씬 높은 책꽂이엔 이름조차 생소한 수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거대한 골리앗처럼 버티고 서서 어린 나를 내려다보던 책들. 두툼한 책과 얇은 책, 커다란 책과 조그만 책, 들쑥날쑥 책들이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서가에서 독특한 책 내음이 풍겨왔다. 책 맨 뒤의 대출 이력서에는 빌려간 이들의 이름이 파란 잉크로 빼곡히 적혀있었는데 그것은 책이 성장한 기록, 책의 나이테였다. 어쩌면 내 몸 어딘 가에도 그 시절 책이 새겨 놓은 나이테가 남아있을지 모른다.


책은 내 주변 어디에든 있었다. 부족한 책꽂이를 대신해 커다란 장롱 위에까지 책들이 자리 잡았다. 그 시대 유행하던 소설책들과 세계 위인전, 한국 위인전, 고전, 세계 명작 세트가 방의 천정에 맞닿아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장롱 위의 책들이었고 잠들기 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는 것도 책들이었다. 책들은 저마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 늘어선 책 들 사이 한 권의 책을 끄집어 내려하면 양옆의 책들은 심술이라도 난 듯 뚱뚱한 몸을 밀착해 오곤 했다. 날마다 책 속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났다. 아문센이 되어 개썰매를 끌고 남극점을 향해 달렸고 장발장이 되어 코제트와 함께 가로수 길을 걷기도 했다. 어떤 날은 이사도라 던컨이 되었다가 또 어떤 날은 산티아고 노인이 되기도 했다.


책 속에 존재하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책 속 세상은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였으며 고난 끝에는 좋은 일이 일어났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누군가가 나타나 주인공을 위기에서 도와주며, 간절히 원하는 일은 대부분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책 속과는 많이 달랐다.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 않았으며, 선이 악을 이기지도 못하였고 늘 흥미진진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완성된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늘 스토리를 새로 써야 하는 날들이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꼭 길을 찾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삶이 버겁고 힘들 때면 책 속으로 달아났다. 한참을 책 속에서 헤매다 보면 세상살이가 고만고만해 보였다. 책은 친구이고 연인이고, 길잡이이고, 스승이고 치유자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책은 곁에 두고 오래도록 읽고 싶었던 아버지였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한두 번 읽고 그냥 스쳐 지나간 책들도 있고 수십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책들도 있다. 헤세의 『데미안』이 10대의 한 복판에 있었다면 루이저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20대에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이 깊어갈수록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가 마지막 외출을 나오시던 날, 아버지는 방안 여기저기를 눈에 담으려는 듯했다. 책꽂이엔 아버지가 아끼던 책들, 손때 묻은 책들이 가득했지만 먼 길 떠나는 이에겐 무의미한 것들이었다. 그가 떠난 뒤 내 가슴엔 구멍이 뚫렸다. 50페이지 남짓에서 멈춰버린 아버지의 책. 무엇으로 어떻게 메워야 할지 아득했던 시간이었다.

도서관 창밖으로 11월의 바람이 불던 날. 마른 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 펼쳐진 책 위에 머물렀다. 문득 서가에서 책을 고르는 아버지의 환영을 보는 듯했다. 허둥지둥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 묘소로 달렸다. 멀리 언덕배기에 아버지의 무덤이 있었지만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가을걷이가 끝난 스산한 들판만 보고 돌아섰다.


한창 아름다워야 할 젊은 날, 어떤 유의미한 것들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방황은 깊었고 길었다. 책을 펼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게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상실을 채우기 위해 더더욱 책에 빠져들었다. 책과 책의 경계를 넘나들며 긴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왔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 허무감이 밀려올 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다. 조르바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세상을 알아 가는 남자였다. “이봐! 자네. 지금 뭐하는가?” “책 읽고 있네.” “그래 책 읽는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책 밖에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하네.”조르바가 말하고 있었다.


책 속을 헤매던 시간은 삶의 나이테를 만들던 시간이었다. 해마다 내 안에 켜켜이 새겨지는 것들. 아버지의 밈들. 서고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복제하고 있었던 아버지의 밈들이 만들어 낸 유의미한 궤적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권의 책이라 했다. 이제 내 책은 아버지 책 두께만큼 되었다. 결론을 알 수 없는 스토리들을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다. 어떻게 전개될지 주인공인 나 자신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책이 곁에 있는 한 여전히 꿈꿀 수 있고, 여전히 세월을 거스를 수 있다. 상상 속 아버지의 서가에서 햇살을 모아 책갈피를 만들 수 있고 조르바처럼 삶을 온몸으로 부딪쳐 밀고 나갈 수 있다.


창밖에 소독이 눈이 내리던 오래전 그 날로 돌아가 본다. 나는 다시 볼 붉은 여자 아이가 되어 네덜란드 풍차마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나무에 살고 있다는 작은 사람 위플라라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커다란 회색 곰의 흔적을 찾아 깊은 동굴로 들어가고 있다. 오래전 아버지처럼 나도 지금 누군가에게 복제될 밈을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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