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시애틀 대추장
홀로 꽃피고 지는 강가의 나무를 찍으려고 차를 멈췄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흙길이었는데 누군가 자갈을 깔아놓았다. 버려진 땅인 줄 알았는데 봄이 되니 본격적으로 경작을 시작할 모양이다. 차가 지날 수 있게 자잘한 자갈들이 흙을 덮고 있다. 새들은 벌써 날아와 땅 속 어딘가에 심어둔 씨앗을 쪼아 먹는다. 어린 초록 싹들이 한두 개 흙을 뚫고 나와 있다.
걸음을 옮기다 도시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완벽한 구조의 거미줄을 발견했다. 억새와 노란 유채꽃 사이 이슬 맺힌 영롱한 거미줄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밤새 고단한 작업을 하고 풀 숲 어딘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지 모른다. 털썩 거미줄에 먹잇감이 걸리면 느릿느릿 여유로운 걸음으로 올라올 것이다. 거미줄은 이미 말라가는 억새와 노란 유채꽃 사이를 연결하여 만들어졌다. 유채꽃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쳐버렸거나 아니면 모르고 훼손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곳에 경작을 시작한 이는 곧 이 거미줄을 제거해 버릴 것이다.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살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거미가 쳐놓은 덫... 거미는 거미줄 어딘가에서 덫에 무엇이든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어떤 벌레들은 아마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거미줄(Web)은 문자 그대로 거미가 만드는 줄이다. 모든 거미가 거미줄은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거미줄은 항문 근처에 있는 한 쌍의 방적 돌기에서 나오는데 흔히 우리는 입으로 거미줄을 내뿜는 것으로 생각한다. 세로줄은 점성이 없지만 가로줄은 점성이 있어서 지나가던 벌레가 붙는다. 다른 벌레는 모두 거미줄에 있는 점성 성분 때문에 달라붙는데 왜 거미 자신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까?
1990년대에는 거미는 점성이 없는 세로줄로만 걸어 다닌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거미들은 거미줄을 칠 때 1000번도 넘게 끈끈한 줄을 밟는데 거미 다리에 있는 뻣뻣한 털들이 끈끈한 점액이 다리에 붙는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여주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거미 몸에서 끈끈이가 붙지 않도록 하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고도 한다. 만일 다른 거미가 친 거미줄에 닿으면 저마다 분비되는 점성 물질이 달라 조심해야 한다. 거미들끼리도 각자 소유한 거미줄을 교환하거나 공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정교하게 쳐진 거미줄.. 거미는 살기 위한 덫이고 걸려드는 다른 생명들에겐 죽음의 덫이다.
시애틀 대추장의 연설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또한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가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매달린 그물에 무슨 짓을 저지르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그 엄중한 경고를 이른 아침 거미 한 마리가 만들어 놓은 작품 앞에서 떠올리고 있다.
'시애틀'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1874년 미국의 인디언 대추장의 이름인 '시애틀'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백인들에게 초기 인디언들은 먹을 것 등의 호의를 베풀었지만 백인들은 대살육과 인디언 보호구역으로의 이주와 같은 형태로 핍박했다. 인디언들에게 1874년 미국의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은 대추장 '시애틀'에게 땅을 팔라는 제안을 했고 이에 대해 대추장 '시애틀'이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에게 답장을 보냈는데 바로 그곳이 시애틀 추장의 ‘명 연설문으로 남았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 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 중략)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중략)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형제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들은 우리 형제들이다. 바위산, 풀잎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이 땅을 팔더라도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 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땅의 온기와 하늘을 어떻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추장의 말이 가슴에 와 박힌다. 이 땅의 기억을 간직하고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서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는 그의 간절한 바람은 지켜지지 않았다.
거대한 생명의 그물에 매달린 수많은 종들... 어쩌면 인간들은 스스로 그물을 짜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무기력하고 연약한 존재다. 눈 앞에 보이는 재앙에 가까운 환경 문제. 여전히 끝나지 않는 전염병과의 사투... 불안과 공포, 이기심과 탐욕, 파괴와 건설... 인간이 만들어 낸 쾌적하고 편리한 것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들의 희생,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의 파괴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하는 그물... 그물 안에서 인간들은 스스로 그물을 훼손하고 있다.
덫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 거미 스스로 덫을 훼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것인데 인간들은 아마도 알지 못할 것이다. 생명의 그물에 스스로가 저지르는 야만의 행위들을...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