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검은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어디론가 질주하던...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한 여름의 하늘이라고 보기엔 둔탁한 하늘빛.

어디선가 채도가 낮은 검은 구름이 생겨난다. 소나기라도 내릴 모양인가.

그러나 그것은 검은 회색 빛 구름이 아니라 거칠게 솟아오르는 연기였다. 7월 하늘을 강타하는 검은 회색 구름은 점점 빠르게 하늘로 번져온다. 신호대기 중이던 출근길 차량들. 운전자들의 시선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너머에서 번져오는 회색 연기에 일제히 꽂혀 있다.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119구급차가 달려온다. 길을 만들어 주느라 차들은 일제히 양 쪽으로 비켜선다.

이른 아침 도로 한복판에 '진도'의 물길이 생겨난다.

소방차 여러 대가 빠르게 질주한다. 소리들이 앞서 달린다.


하늘로 번져오는 검은 연기의 규모로 보아 심각한 상황임이 틀림없다.

뉴스에서나 보아온 일들이 인근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직접 현장에 있지 않아도.... 매캐한 연기와 잡히지 않는 불기둥과 아비규환의 외침들,

통곡하는 소리, 위태로운 탈출을 감행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몸짓이 그려진다.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는 모양이다.

추가로 소방차들이 투입되는 듯하다.

도로를 가득 채운 사이렌 소리들.


어제까지만 해도... 어젯밤까지만 해도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자신과는 아무 일 없는 일상. 뉴스를 보며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 평범한 이웃들이다.

치솟는 검은 연기.....

멀리서 찍은 사진... 증기기관차의 모습처럼 찍혀있다.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증기기관차.

20210712_094420.jpg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인류의 미래는 해피엔딩일 거라는 희망을 싣고 달리던 그 옛날..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무언가는 곧 우리에게 핑크빛 미래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하늘 가득 솟구치는 검은 연기 기둥 아래 수많은 소방인력들이 불길을 잡고,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 세상의 누군가들은 출근 준비를 하고 아침을 차리고 누군가들은 도로를 달리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관통하는 검은 회색 연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채도가 높은 회색 하늘 아래...

무언가 극적인 날들이 아닌 아무 일 없이 무탈하다는 사실이.

그날이 그날 같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이지라도

바로 그날이 ‘가장 좋은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 려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블랙박스 속에서 복기하는 일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