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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지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

펜과 책으로 어둠을 이겨낼 수 있을까...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장악했다.

아프가니스탄... 대학시절 TIME 지에서 처음 접한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과 헤지블라... 그 묘한 명칭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탈레반의 입성 직전 도주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2000억 원의 돈다발을 가지고 갔느냐의 사실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가 UAE로 도주하지 않았다면 그는 탈레반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을 버리고 도주했기 때문에 아프간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이미 살해당한 자다.


가려지는 몸… 사라지는 존재감

예멘 여성 사진작가 부슈라 알무타와켈의 2010년 연작 ‘엄마, 딸, 인형’ 작품이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또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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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모녀와 인형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엄마와 딸의 복장이 히잡, 차도로, 니캅 그리고 부르카로 차례차례 바뀐다. 몸이 가려질수록 존재감은 사라진다. 작품의 맨 마지막은 온통 암흑이다. 엄마도 딸도 인형도 사라진... 어둠. 오직 어둠이 배경이고 어둠이 인물이다. 표정조차 드러낼 수 없이 감추어진 몸, 감추어진 삶, 감추어진 현실... 그리고 감추어질 미래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 자이는 2013년 유엔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린 어둠을 접할 때 빛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함께하는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식이라는 무기로 무장해 함께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빈곤과 부정, 그리고 무지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 수백만 명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육받지 못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강한 무기인 책과 펜을 들고 문맹과 빈곤, 테러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어린이 한 명, 선생님 한 분, 책 한 권, 펜 한 자루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육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어둠을 접할 때 빛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말.... 그러나 그 어둠이 빛을 피울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할 때 어둠을 이기고 빛을 쟁취하기는 어렵다.

말랄라는 어둠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책과 펜이라 말한다.

총과 미사일도, 핵무기도 아닌 책과 펜.

책과 펜이 어둠을 이길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어쩌면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를 견디게 했던 것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으니 책과 펜으로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세력 탈레반을 이기는 것. 억압, 차별, 공포, 두려움을 이기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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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특히 여성과 어린이를 돕는 일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2007년 파키스탄 스와트 계곡의 내 고향을 탈레반이 점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들의 교육을 금지했을 때 나는 숄 밑에 책을 숨기고 두려움에 떨며 학교에 갔다. 5년 뒤 15살이 되었을 때 탈레반은 내가 단지 학교에 갈 권리가 있다고 얘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죽이려 했다”라고 회상했다.

11세부터 탈레반 치하의 삶을 전하고 여성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명세를 얻었던 말랄라는 15살 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고 탄 버스 안에서 한 남성에게 3발의 총탄을 맞는 테러를 당했다. 영국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말랄라는 이후에도 가족을 해치겠다는 탈레반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말랄라는 “총을 든 남자들이 규정하는 대로 삶을 되돌릴 수는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일부 탈레반들이 여성이 교육받고 일할 권리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여성 인권을 폭력으로 탄압한 탈레반의 역사를 고려하면 아프간 여성들의 두려움은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말랄라


가려진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드러내지 못함. 드러낼 수 없음은 사라짐을 전제로 한다. 얼굴을 드러낸 모녀는 활짝 웃고 있다. 모녀의 얼굴을 가리고 미소를 가리고 모녀의 몸을 가리고... 모녀의 삶을 가리고 모녀의 정체성을 가리고 모녀의 모든 것를 가리는 것...

탈레반의 정권 장악이 다만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억압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이 가려버리는 것은 아프간 여인들의 얼굴과 몸뿐만이 아니라 함께 누릴 자유, 평화, 진보, 성장, 발전의 가능성 들이다. 종국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미명 하에 아프간의 미래를 가려버릴지도 모른다.


탈레반 무장 단체가 미국이 아프간에 제공했던 최신 무기들을 모두 접수했다는 아침 기사를 읽는다.

무기..... 사람들의 펜과 책으로 그 무기들의 잔혹함을 이겨낼 수 있을까.

책과 펜이 어둠을 이길 수 있다는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말이 유효하기를 바라며...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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