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고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비 오는 날>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천양희
늦은 장마가 시작되고 있다.
어느 집 베란다에 달아놓은 풍경, 풍경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옥탑방 베란다에 걸쳐놓은 해먹은 비에 젖어 있다
누군가의 집 베란다의 고추들은 비바람에 신이 났다.
주황색 부리 초록 앵무새는 오늘따라 심술이 났다.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하여 알아듣지 못할 발화를 계속하는 것인지. 응석 같기도 하고 주장 같기도 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대한 불만인 듯도 싶다.
유전자에 각인된 열대 우림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젖은 하늘, 구겨진 하늘,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으로 엷은 망사 커튼이 휘날리고
빗방울이 몇 방울 들이친다. 비 오는 날은 온통 소리들의 세상이다.
도로 위에 뿌려지는 비의 걸음 소리......
<비 오는 날> 천양희 시인은 쏟아지는 것, 퍼붓는 것이 비의 숙명이라면 누구에게든
비의 마음이 되어 쏟아지고 싶고 퍼붓고 싶다고 말한다.
쏟아지고 퍼붓는 마음은 결이 촘촘하다.
그것이 원망이든 사랑이든, 애증이든 집착이든 퍼붓고 쏟아지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비는 쏟아지고 있다. 간간이 으르렁 소리를 동반하며 퍼붓기도 한다
비가 조금 주춤해졌다.
풍경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들
잎들에게 남은 날들은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는 말,
없다는 것만 알 뿐
-라이너 쿤체 -
비는 내리고
나는 자판 위에서 쓰고 싶은 말을 찾아 헤맨다.
퍼붓고 싶은 마음, 쏟아지고 싶은 마음을 행간 어딘가에 놓아두고 싶다.
그러나 쿤체처럼 ‘더는 모르겠고 더는 없다는 것만’ 알게 된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퍼붓는다.
그것이 비의 마음이라면........... 하루 종일......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