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 따라..... 기다림을 위한 기다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다려본 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일부러 약속 장소에 일찍 간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약속 장소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그 혹은 그녀가 오기 전까지 책을 보며 기다린다. 가끔씩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들을 살피고...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걸어오고 있는 수많은 누군가들을 바라본다.
기다리는 시간은 축복의 시간이다. 만남은 어쩌면 기다림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차가 밀리거나 다른 이유로 그 혹은 그녀가 평소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여도 마음은 평안하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니까. 또각거리며 서둘러 들어서는 누군가의 미안한 표정을 바라보는 일도 재미있으니까.
솔직히 나는 기다리는 일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미루지 못한다. 하고 후회할 것인지 하지 않고 후회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전자다. 후회하더라도 무언가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머뭇거림이라는 단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즐거운 유희다. 햇살 비치는 창가나...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 무렵의 창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도 이미 만남의 일부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려본 자는 안다. 시적 화자의 마음을.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 지친 시적 화자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다가 아니라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고 한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시적 화자가 만나기를 바라는 ‘너’는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오고 있고 시적 화자인 ‘나’는 아주 먼 데서 너에게로 간다. 시적 화자는 공간적으로 먼 곳. ‘너’라는 대상은 시간적으로 아무 먼 곳에 존재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어쩌면 현생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함에도 너를 기다리는 동안 가고 있다고 한다. 가고 있는 것은 시적 화자의 몸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마음일 수도 있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기다리는 동안 어쨌든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을 따라 시적 화자인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거기 그곳과 지금 여기... 시공간적으로 아주 먼 곳. 그 만남의 단서는 시적 화자의 가슴에 쿵쿵거리는 발자국이다.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그 발자국의 공명음을 따라가고 있다.
청록색 바탕에 어깨를 드러낸 이 여인의 초상에서 나는 황지우 시인의 시 <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을 떠올린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공통점은 목이 유난히 길고 얼굴 또한 길다 (갸름하면서). 터키 블루로 칠해진 눈에는 눈동자가 구별되어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모딜리아니 작품 속 여인들을 보며 나는 왜 기다림을 생각하는가. 그 여인들의 눈빛은 기다리는 자의 눈빛이다. 기다리지만 기다리지 않고 이미 가고 있는 눈빛이다.
쿵쿵거리는 발자국을 따라 여인의 터키 블루 빛 눈도 흔들린다. 여인은 이미 가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오고 있는 ‘너’를 향하여..... 오랜 세월을 다하여 오고 있을 ‘너’를 향하여.. 여인은 이미 가고 있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