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
아무 관계도 없는 낯선 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흥미롭다. 버스를 기다리는 이, 횡단보도를 걷는 이, 마트에서 무언가를 사는 이들,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을 관찰하는 일. 특정한 관계로 규정되지 않은 누군가들을 아무런 부담감 없이 바라본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이다. 우리는 모두 그냥 누군가의 누군가 들이다.
‘주의 깊게 보다’가 아닌 ‘그냥 보다’ 즉 시선 가는 대로 그들을 바라본다.
어느 순간 마트 계산대 앞에 서있는 청바지에 흰 셔츠를 맞춰 입은 부부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남편은 계산대에 물건을 하나씩 하나씩 올려놓는다. 아내는 계산대 위의 물건을 정돈하며 남편을 보고 웃는다. 그냥 마주 보고 웃는다. 남편의 흰 티셔츠 칼라를 세워주며 아내는 또 무언가를 속삭이듯 말한다. 쇼핑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그들은 쉼 없이 웃고 또 무언가를 말하며 웃는다.
무엇이 나의 시선을 그들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스토커처럼 그들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그들은 얼굴을 맞대고 무언가를 말하며 또 서로 웃고 있다.
군데군데 흰머리가 보이는 희끗한 머리칼. 전혀 꾸미지 않은 중년 부부다. 명품 티셔츠를 입은 것도 아니고 흰색 면티셔츠에 청바지를 세트로 입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그들에게선 어딘지 빛이 난다. 그들에겐 마주 보고 할 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웃음 지을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사실 결혼 제도 속에 부부가 함께 살다 보면 상대방의 눈빛만 보아도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미 익숙해져서 웃음이나 대화는 때로 정해진 매뉴얼 같다. ‘이럴 땐 이런 식의 반응이 상대방을 즐겁게 하겠지’. ‘이런 말을 하면 기분 상할 테니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대본에 정해진 것을 읽는 배우들처럼 이미 매뉴얼화된 삶을 살아간다. 일종의 길들여짐이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좋은 의미의 길들여짐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타성적이고 진부한 길들여짐이다.
서로를 길들임과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 야생성을 잃어가는 것이 현대인의 결혼생활이 아닐까. 적당히 웃고 적당히 표정 관리를 하는 것.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서로를 해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
쉼 없이 마주 보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야생의 아름다움을 본다. 남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서로만을 지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주차장에서도 마트에서도 그들은 늘 한결같을 것이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의 풋풋한 복장에는 여전히 푸른 그들의 시간이 있고 눈빛에는 존중이 스며있고 입가에는 배려가 머문다.
길들여지되 길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여전히 찬연한 것, 여전히 야생적인 것들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숲길에서 발견하는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풀... 잎사귀가 완벽한 하트다. 인위적으로 만든다 해도 이토록 완벽한 하트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자연이 만든 거룩한 하트 앞에서 나는 또다시 흰 티셔츠 청바지 부부의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