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측정불가능한 무제한적 견딤이 우리를 살게 한다
<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나는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옷돌이 공손하게 옷장 안에서 기다리는 일
비누가 접시 위에서 조용히 말라가는
수건이 등의 피부에서 물기를 빨아들이는 일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팻 슈나이더-
*팻 슈나이더(1934~) 시인이며 극작가, 오페라 대본 작가. '인간은 글을 쓰는 동물'이라는 인식하에 가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문학 활동을 해오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생명을 지닌 것보다 생명을 지니지 않은 것. 소위 ‘사물’이라 부르는 것 투성이다. 개별적인 이름이 존재하지만 사물은 '살아있지 않음', '생명 없음'을 전제로 존재하는 물건들이다.
팻 슈나이더의 시 한 편에 문득 그들의 인격과 인내심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견디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애써 참아내고 있는 것들의 무게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는 다하여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눈 앞에 보이는 사물 중 가장 많은 것이 책들이다. 책을 사는 것을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욕심나는 신간이 뜨면 또다시 지르고야 마는 중독... 그러하다 보니 책꽂이의 책들은 인내심의 한계에 와있는 듯하다. 좁아지는 공간, 가로로 드러눕기 시작한 책들... 평소에 관심을 받던 책들도 새로 유입된 책들 때문에 책꽂이 앞면에서 뒤면으로 밀려난다.
책들의 인내심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의 기다림에 대해서. 그들의 분노하지 않음에 대해서. 그들의 무제한적 견딤에 대하여.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이런 사물들의 견딤 때문이 아닐까.
일일이 따지지 않고 나서지 않고 그냥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
사실 나는 그런 견딤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다. 무엇이든 즉시 알아야 하고, 보이는 만큼 해결해야 하고, 아는 만큼 행동해야 한다. 견디지 못하기에 행동하는 것이다. 추진력이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내심이 없다는 강력한 증거다.
평범한 것들의 인내심.... 책과 책. 곁에 두고 보려고 꺼내 온 책이 또다시 책상 위에서 탑을 이룬다. 지층 같다. 몇 번의 퇴적인가. 몇 번의 부정합을 거쳤을까.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이런 보이지 않는 견딤들이 아니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화되지 않은 것들. 측정 불가능한 무제한적 견딤들.
무언가를 입력하기 위해 두드리는 키보드도 견디는 사물 중 하나다.
로그아웃이라는 휴식의 명령어가 떨어지기 전까지.... 쉴 수 없는 것.
그들은 그저 견딤의 시간들을 견디고 있다.
.......... 그 와중에......
하루키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뉴스.......
또 한 권이 퇴적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아침이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