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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

태생적으로 우리는 '없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은 무언가가 '없는' 사람들이다.

없는 사람들. 나는 가끔씩 존재한다 그리고 자주 부재한다. 나의 전부가 존재하기도 하고 전부가 부재하기도 하고 일부가 존재하기도 하고 일부가 부재하기도 한다. 존재와 부재 사이 나는 가끔 나를 잊는다.

세상에 있으나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 세상에서 잊힌 사람처럼 살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런 날 나는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날 까꿍 놀이처럼 눈을 감는 동안 눈앞의 모든 것은 부재하고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존재하듯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던 때 세상은 눈앞에 보일 때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겨울나무들은 '없음'의 나무들이다. 열매도 잎사귀도 꽃도 없는 마른 가지 끝이 거침없이 하늘을 겨누고 있다. 하늘이라는 거대한 유리에 쩍쩍 금을 낸다. 금 간 하늘로 해가 뜨고 달이 뜬다. 나무의 끝이 만들어낸 하늘의 균열. '있는' 나무가 아닌 '없는 '나무가 만들어낸 하늘 조각들이다. 하늘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없는' 나무는 또 어느 순간 금 간 하늘에 다시 초록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꿈이 ‘없음’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나무의 꿈도 '없음'에서 싹트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우리 눈에는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깡마른 나무 어딘가에서 몽글거리며 올라올 것이다.




'없는'나무 아래 '없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 '없는'사람들은 새벽 시간 분주하다.

자궁이 없는, 가슴이 없는, 팔이 없는 다리가 없는, 눈이 없는, 마음이 없는, 말이 없는, 양심이 없는, 배려가 없는, 기다림이 없는, 다정함이 없는, 따뜻함이 없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

돈이 없는 집이 없는 빵이 없는 직업이 없는 몸 누일 땅 하나 없는 사람들... 아이가 없는 부모가 없는 가족이 없는 친구 하나 없는 사람들... 결핍의 의미로서의 총체적 ‘없음’을 지닌 사람들....

반대로 궁핍이 없는 불만이 없는 불평이 없는 좌절이 없는 슬픔이 없는 질병이 없는 이기심이 없는 분노가 없는 사악함이 없는 차가움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는 모두 무언가 한 가지 씩은 없는 사람들이다.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겨울나무 아래. 한쪽 가슴이 없는 사람이 남은 한쪽 가슴을 부풀리며 걷고 한쪽 팔이 없는 사람은 남은 한쪽 팔을 힘차게 저으며 걷는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희망을 부풀리며 걷고 설렘이 없는 사람은 설렘을 부풀리며 걷는다.

이 겨울, 메마른 나무 아래 깡마른 나무가 쩍쩍 금을 낸 하늘 아래를 걷는 사람은 누구든 없는 사람이다.

살아 있는 한 슬픔이 없는 아픔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지금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없는 사람들이다.

태생적으로 우리는 ‘없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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