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그것'을 찾으려하는 노인과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는 여인
사람은 저마다 푸른 꽃을 찾아 헤맨다
나의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소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세상의 모습이 아니다.
나에게는 욕심이 없다. 그러나 푸른 꽃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그 꽃이 나에게는 늘 마음에 걸려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 < 푸른 꽃 > 노발리스
튀링겐 지방 광부들의 전설에 등장하는 푸른 꽃은 성 요한 절 밤에 피는데 이 꽃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상금이 주어진다는 낯선 사내의 이야기로부터 노발리스의 <푸른 꽃>은 시작된다. 노발리스의 본명은 게오르크 필립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인데, 노발리스는 라틴어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푸른 꽃은 찾아 헤매는 소설 속 주인공 하인리히는 노발리스 자신이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푸른 꽃은 어디에 있을까? 푸른 꽃을 찾는 이유는 상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이유, 푸른 꽃은 또한 푸른색의 꽃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뤼겐 섬의 백악 절벽 Chalk Cliffs on Rügen 1818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뤼겐 섬의 절벽>이란 작품이 있다. 1818년 여름 아내 봄머와 뤼겐 섬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그린 풍경화인데 인생의 순환을 상징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세 사람이 등장하는 데 화면 왼쪽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신부, 화면 오른쪽 모자를 쓰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가 프리드리히 자신, 가운데 엎드려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남자는 노인처럼 보인다. 기이할 정도로 뾰족한 새하얀 암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두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다. 하나는 가까이에, 다른 하나는 멀리 항해 중이다. 모자를 쓴 남자는 팔짱을 끼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빨간 옷의 여자는 풀밭에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고 노인은 지팡이와 모자를 팽개치고 여인이 가리키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카스파르의 그림 속 늙은 남자는 땅에 엎드려야만 보이는 작고 소중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작품 오른쪽 젊은 남자는 붉은 옷의 여자가 가리키는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멀리 보이는 바다와 배를 응시한다. 젊은 남자의 생각은 멀리 보이는 것. '여기 이곳'이 아닌 '저기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동경, 이상을 추구하는 남자. 붉은 옷의 여자는 '지금 여기'에서 풀 밭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을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자는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붉은 드레스 차림의 여자는 무릎 꿇고 엎드려 적극적으로 찾으려 하는 대신 손가락으로만 지시한다. "거기 있잖아요? 어서 그것을 찾아서 내게 주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 남자는 발아래의 것은 안중에도 없고 여자는 보고는 있으나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산길을 오른 늙은 남자만이 엎드려 오직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찾으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늙은 남자에게 '그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늙은 남자가 엎드려 그토록 집요하게 찾고자 하는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붉은 옷의 여자(신부)가 가리키는 무언가를 팔짱을 낀 채 바다를 바라보는 젊은 남자(신랑)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았다면 여자가 가리키는 무언가를 쉽게 찾았을 것이다.
노발리스의 작품 <푸른 꽃>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뤼겐 섬의 백악 절벽은 인생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인이 엎드려 찾으려는 것은 '푸른 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푸른 꽃을 찾아 헤맨다. 정성 들여 찾아야 하는 무언가로 지칭되는 '푸른 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쩌면 푸른 꽃은 바로 가까이에 있는지 모른다. 자기 발아래 있는지도 모르지만 발아래 것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으면서 멀리 보이는 것, 가 닿을 수 없는 것에 시선을 두면서 현실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한다.
사람이란 젊음을 소진하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삶의 교훈을 체득하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갓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붉은 옷의 신부와 팔짱을 끼고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는 신랑에게 푸른 꽃은 지금 즉시 찾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것이 아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가 찾아야 하는 푸른 꽃은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나는 여전히 손가락 끝으로 푸른 꽃을 가리키는 허영스러운 여인의 단계에 머물러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