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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정원으로 오라

3월의 후각을 잃어버린 시대에.... 봄은 살아남아 끝없이 우리를 부른다

3월이 지고 있다. 3월이 핀지도 모른 채로 지냈다.

3월에는 3월 만의 냄새가 있었다.  교복을 입던 학창 시절. 다리미의 따스한 온기가 묻어있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향해가던 때 3월의 냄새가 났다. 새 교실, 새 친구, 새담임, 새 교과서... 그 모든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묻어나던 오직 새것들만의 냄새... 새로운 것이 주는 낯섦의 냄새가 있었다.

하늘은 유난히 파랬고 나무들은 연초록 봄을 잉태하고 있었다.

교정에 가득 찬 3월의 소리들.... 희망이 넘쳤고 일상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찬란한 새로운 것들 아래 눈은 빛났고 미소는 맑았다.  오래전 그 시절... 3월만이 선사하는 새로운 것들의 기억이다.

약간의 추위와 약간의 온기가 적당히 뒤섞인 3월의 바람을 기억한다.     


문득 개나리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샛노란 개나리... 당연히 3월이면 피어나는 것을

나는 ‘문득’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3월의 후각을 잃어버렸구나.... 어느 순간 3월의 기억을 상실해버렸구나.

어떤 꽃도, 어떤 향기, 어떤 나무들도... 어떤 움직임들도 3월 다움이 없었다.  분명 3월 다움은 있었을 것이지만 나는 3월 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리라.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로 3월의 후각을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익숙한 일상 속.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모든 것에 무디어져 가고 있다. 그 무디어져 가고 있음을 ‘문득’ 깨닫고 있다니....

코로나 시대....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기억의 후각을 잃어버린 것을 코로나에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의 촉수가 무뎌진 것이리라... 세상이 전하는 그 모든 목소리들에 덜 친절해지는 것이리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냥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어딘지 모르게 사라져 가는 내 안의 것들을 외면한 것이리라.


<해마다 봄이 되면>이라는 조병화 시인의 시가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은’ 땅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을 하는 봄처럼  부지런해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을 지금 내(시인)가 어린 벗에게 다시 되풀이한다.

해마다 봄은 온다.  그 봄 속에 피어나는 가슴을 품고 봄처럼 쉼 없이 부지런하고 새로울 수 있을까..     

아마도 그리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3월의 후각이 무디어지기 전에는..     


<봄의 정원으로 오라>

                        잘랄루딘 루미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Come to the garden in spring.

There’s wine and sweethearts in the pomegranate blossoms.

If you do not come, these do not matter.     

If you do come, these do not matter.     


잘랄루딘 루미는  <봄의 정원으로 오라>에서 꽃과 술과 촛불이 준비되어 있으니 당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기에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한편 당신이 온다면 이 모든 것들은 또한 의미가 없는 것들이 된다. 꽃과 술과 촛불이 당신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봄의 정원으로 오라고.... 봄이 이야기한다.

봄의 정원, 봄의 식탁에.... 봄이 준비한 모든 것들이 놓여있다.

여전히 봄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체 봄의 정원으로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문득 개나리가 피었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문득 필 수 없는 것들을..... 문득 쳐다본 내가 문득 개나리가 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니 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3월의 달력을 다시 쳐다본다.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 시간은 늘 그렇듯 어떤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흐른다..

너무 오랫동안 3월의 기억을 방치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후각... 정지된 후각을 다시 일깨우는 일......

아직 봄은 끝나지 않았다. 봄은 여전히 살아남아 끝없이 우리를 부른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고..

봄의 정원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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