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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서 그해 제일 아름다운 불을 지펴야 할 때

삼가고 다독이고 격려하는 3월이기를...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數千) 수만(數萬)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삼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네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마르크 샤갈 < 나와 마을 >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샤갈의 마을은 현실의 마을일 수도 있지만 상상 속의 마을일 수도 있다

샤갈의 마을에는 봄을 바라는 사나이가 살고 봄을 바라느라 바르르 떠는 그의 관자놀이에 수천수만의 날개를 단 새하얀 것들이 내려온다.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새하얀 눈들이 덮는다.

샤갈의 마을에 3월에 눈이 내리면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이 올리브 빛으로 물들고 아낙들은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삼월에 내리는 눈은 봄눈이다. 봄눈은 쌓이지 않는다.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사뿐히 내려앉을 뿐...

마르크 샤갈의 작품 <나와 마을> 은 러시아에서 파리로 돌아온 지 1년째 그린 그림이라 한다.

올리브 빛 얼굴의 남자와 소인지 염소인지 모르는 동물이 마주 보고 있다. 젖을 짜는 여인과 낫을 들고 농부,  동그란 올리브빛 열매들, 옹기종기 늘어선 집들, 동화 속 세계처럼 거꾸로 서있는 여인과 집, 십자가가 선명히 보이는 교회가 그려져 있다. 선으로 구획된 배치 속 빨강과 파랑과 초록은 따뜻하고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캄캄한 밤하늘과 파란 하늘의 공존, 동물과 인간의 공존. 저마다의 터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축복처럼 열리는 열매들...     


 '올리브나무 (Olive)'는  인류가 재배한 지 가장 오래된 나무로 비둘기와 같이 ‘평화’를 상징한다. 올리브 빛으로 물드는 열매들... 한때 올리브 그린색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어떤 색에 집중적으로 빨려 들 듯 좋아하는 것.... 올리브 그린은 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색임에도  그 색이 주는 안온함이 좋았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파는 올리브나무는 지나치게 단아하고 깔끔하다. 그래서일까 실제 올리브 나무 군락지의 올리브나무를 보고 수령이 오래된 뒤틀린 올리브 나무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수많은 열매들을 올리브빛으로 물들이기 위해 올리브 나무를 물감을 짜내듯 제 몸을 비틀어야 했을까. 나무의 몸 안에 기록된 무언가가 올리브 열매를 그렇게 물들여낸 것이리라.     


벌써 3월이 중반을 향해간다. 샤갈의 마을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3월에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새하얀  눈이 내릴 리도 없고.  올리브빛 얼굴의 사내의 관자놀이가 파르르 떨릴 리도 ,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이 올리브빛으로 물들 리도 없다. 아낙네들은 더더욱 그해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필 일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샤갈의 그림과 김춘수의 시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으면 샤갈의 마을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문득 ‘삼가다’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두 가지 정도 어긋났다. 어쩌면 나의 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당연히 그리되리라 생각했던 것. 생각은 자유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게다가 세차하러 갔다가 넘어져 얼굴을 다치기도 했으니.... 이번 주까지 다행히 피부과 치료가 끝나간다. 눈 아래쪽 올리브빛 얼굴 남자의 관자놀이 위치에 붙은 듀오덤 밴드를 바라보며 ‘삼가다’라는 말을 곰곰 머리에 새겨 넣고 있다.


매사에 삼가는 일은 중요하지만 글을 쓰는 이에게 어쭙잖은 자만은 독이다.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는 이들이 많은가. 삼가고 경계하고 다시 시작하는 일들이 남아있다.

김춘수도 샤갈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뒤에 남은 누군가는 그들의 시와 그림으로 위로를 받고 있지 않은가. 설령 이곳이 샤갈의 마을이 아닐지라도... 한없이 그림을 바라보고... 단어 한 자 한 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도 올리브빛으로 물들고.. 그해 아름다운 불이 지펴지지 않을까.

토요일..... 3월의 햇살이 내리쬔다.     

혼돈스럽고 요란했고 부단히도 아팠던 0.73프로의 대선이 막을 내렸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삼가고 조심하고 다독이고 격려하며 

서로의 마음에 붙은 상처들을 다스릴 시간이다.

바라던 일이든 바라지 않았던 일이든.... 이제는 다시 시작할 일들만이 남아있다./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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