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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만 존재한다.
잉에보르크 바흐만

이상한 존재방식이다. 반사회적이며 고독하고 지긋지긋한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 I find my self saying briefly and prosaically that it is much more important to be oneself than anything else."

          

책상 앞에 오래된 달력이 있다.

글 쓰는 여자들에 대한 사진과 그들의 짧은 말이 적힌 달력이다. 날짜도 맞지 않는 해묵은 달력을 버리지 못하고 노트북 바로 앞에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시몬 드 보부아르 ( 1908.1.9. ~ 1986.4.14.)     

“ 나는 대작가가 아니다. 대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내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전해주는 데서 존재 가치를 두고 싶다.”     

1월 애거사 크리스티( 1890. 9. 15~ 1976. 1. 12)

“ 튼튼한 책상과 타자기 외에는 필요한 게 없어요.”     

2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 11. 14~ 2002.1. 28)

“너는 언젠가 작가가 될 거야. 그 말을 들은 나는 절대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3월 잉에보르크 바흐만 ( 1926.6.25.~1973.10.17.)

“나는 글을 쓸 때만 존재한다. 글을 쓰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을 때면 나 자신이 몹시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상한 존재방식이다. 반사회적이고 고독하며 지긋지긋한 일이다. ”     

4월 샬럿 브론테 (1816.4.21.~ 1855.3.31.)

“삶이 이토록 공허하고 짧고 혹독한 이유를 모르겠다.”     

5월 이사벨 아옌데 (942.8.2~)

“글쓰기는 사랑을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 오르가슴을 의식하지 말고 그저  과정에만 집중하라”     

6월 실비아 플러스( 1932. 10.27~1963.2. 11)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7월 수전 손택 (1933. 1. 16~2004. 12. 28)

“작가란 세상 모든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다. ”

8월 도로시 파커 (1893. 8. 22~1967.6.7.)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술과 애인 때문이에요."

9월 토니 모리슨(1931. 2. 18~)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10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921. 1.19~1995. 2.4)

“글을 쓰는 일은 개인적인 일로, 그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글 쓰는 행복을 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11월 카슨 매컬러스 (1917.2.19.~ 1967. 9.29)

“나는 내가 창조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 덕분에 나의 외로움은 늘 누그러진다.”     

12월 마르크리트 뒤라스 (1914.4.4. ~1996.3.3.)

“작가는 작품의 소재를 종이에 옮기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12월에서 시작하여 이듬해 12월로 끝나는 탁상달력. 시몬 드 보부아르에서 시작하여 마르그리트 뒤라스로 끝난다. 쓰는 것에 대한 그들의 짧은 단상이 적혀있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존재한다. 글을 쓰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을 때면 나  몹시 생소하게 느껴진다. 이상한 존재방식이다. 반사회적이고 고독하며 지긋지긋한 일이다. ”

잉에 보르크 바흐만은 글을 쓸 때만 자신이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반 사회적이고 자폐적이며 지긋지긋한 일을 반복하는 이상한 존재방식이라고..     

튼튼한 책상과 타자기 외에는 필요한 게 없다는 애거사 크리스티.

이들중 대부분은 고인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들이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그들을 만난다. 활자 속에서. 활자 사이의 침묵 속에서. 활자와 활자 사이의 간격 속에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나도 그들처럼 튼튼한 책상과 타자기. 타자기 대신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처럼 (이미 그녀는 대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대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나는 당연히 대작가가 아니며, 대작가가 될 능력도 자질도 열광하는 마니아들도 없다.  

그럼에도 왜 자판을 두들기는 것일까. 고독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업을 자꾸 반복하려는 것일까. 내면에서 꺼낼 게 무엇이 있다고 자꾸만 아웃 풋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교실 뒤에 내 글이 붙어있던 날.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아이도 아니었는데 무언가를 거침없이 적었던 빨간 원고지가 교실 뒤 우리들의 솜씨 코너에서 펄럭이던 날.

그때부터였을까. 그냥 쓴 글을 누군가 최초로 인정해준 그날. 원고지 위로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던 그날.

아버지는 방학 때면 학생들이 쓴 원고들을 한 뭉치씩 가져오셨다. 이른바 학교에서 글 좀 잘 쓴다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글.... 수북이 쌓인 원고 뭉치. 어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읽고 또 읽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글은 러시아 문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학 학생의 글이다.

자작나무 숲과 러시아 문학에 빠져있던 익명의 그 사람을 생각했다. 중학생인데 그런 구체적 포부를 갖고 있다는 게 어린 내 눈에도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요즘은 원고지를 쓰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원고지를 사 오라고 하면 골동품을 사러가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부터도 원고지에 글을 쓰면 다시 타이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원고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원고지에 글을 쓰다 보면 타이핑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곤 한다.    

 

글을 쓰는 이들은 넘친다.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글쓰기 강좌도 많고 공모전도 많고 자비 출판도 많다.

브런치를 클릭하면 브런치 공모전 마감이 뜬다. 작년에 대상을 뽑았던 대표 출판사 사람들이 나와서 "대충 이런 글이 먹힌다."라고 이야길 한다. 또한 "작년에 이러이러한 글이 기억에 남는데 한 편밖에 고를 수 없어 아쉬웠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브런치 북 응모를 해도 뽑히기 어려운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대중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는 글을 쓰는 이유는 대중의 까다로운 입맛에 나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의 말투처럼 글을 쓰는 이에게도 글투라는 게 있으니까.

언제부터인가 누군가를 의식하고 글을 쓰면 불편해졌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고 그냥 쓰려한다.

왜 쓰는지를 묻는다면 “그냥 쓴다” 혹은 “써야 하기 때문이다.”가 나의 대답일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어떤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물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생각이 0도 없다는 말은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뽑히는 일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 어렵고 희소하다.

몇 년도에 무슨 무슨 상을 받았으니 올해는 더 좋은 상을 받아야겠다고 응모해도 더 높은 상은 커녕 수상 후보권에도 들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기회가 많은 것 같지만 에세이로 수상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시와 소설에 비해 수상의 기회도 많지 않고 게다가 에세이를 쓰는 이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쓰려는 이도 많고, 참신한 이들도 많고, 촉이 발달한 혹은 재능이 뛰어난 이들도 많다.


어찌 되었건 탁상 위의 달력 속 여인들. 흑백 사진 속 그녀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쓰고 있다. 

비록 이 또한 자기 만족이고 자기 배설에 불과할지라도...

쓰는데서 ‘오늘’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잉에보르그 바흐만처럼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 려원

열정적인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의 선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얼굴과

별개로 그의 몸 어디에서

그토록 뜨거운 것들이 품어져 나왔을까.

그의 몸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을 열망들

그의 맹렬한 몸짓이

내게 와닿기를...


첫 산문집을 내고 

무언가 할 일을 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언가를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 

늘 두려운 일... 

그래도 컴퓨터와 튼튼한 책상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여전히 흑백사진 속 그녀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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