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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향해 떠나는가 보다는 어디로부터 떠나는가를

호들갑스럽지 않게 고민하는 가을!

떠남이 가까워오는 계절이다. 나뭇잎이 떠나가고 시간이 떠나가고 기존의 익숙한 것들이 떠나가고 달력의 숫자가 떠나간다. 최승자 시인의 글을 읽다가 '떠남'에 대한 부분에 도그지어를 해둔다. 


"존 스타인벡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 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 투성이의 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 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 원리이다.  (중략) 인간은 강하돼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한 번 물으면..(중략) 그 헐벗음 속에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 속에서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차례일지도 모른다.. 

                                                                                   /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문득 ‘호들갑스럽다’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사전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주어진 것들, 희로애락에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어쩌면 인간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꽃 한 송이를 보고도, 아가의 앙증맞은 걸음을 보고도 쉽게 그리고 자주 감탄하는 사람들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일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차별화된 능력 중의 하나가 ‘감탄’;하는 능력이라 한다.

감탄하는 능력이란 정말 대단한 것을 보아야만 감탄하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감탄할 만한 것을 포착하는 능력일 것이다.

감탄하는 능력의 결핍된 자일수록 호들갑을 떨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호들갑과 감탄 능력을 연결 지어 본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호들갑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언젠가 오게 될 미래에도 그리할 것만 같다. 

점점 더 무미해진다고 해야 할까.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슬픔과.... 적당한 것들을 이미 습득해버린 것일까.

심지어 감정에서조차.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 제목처럼 감정도 공부해야 하는 그런 날이 올까.

절제와 균형에 눌린 날것의 감정들은 어느 순간 호들갑스러움을 망각해버렸다. 

무언가 기쁜 일이 생기면 잠깐 기뻐한다. 그러나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오래도록 아파한다. 심리적으로 기쁨의 시간은 스쳐가는 시간이고 슬픔의 시간은 오랜 시간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지도 모른다. 기쁨의 시간과 고통의 시간은 체감되는 강도와 결이 저마다 다르게 느껴지니 말이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짧은 기쁨과 긴 슬픔이 있다 해도 혹은 긴 기쁨과 짧은 슬픔이 있다 해도 호들갑 피우지 않는 것.... 익숙해진 감정의 균일 화인가.     

누군가 물에 돌을 던지면 파동이 인다. 그 파동은 수면 위로 퍼져나가지만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간다. 그런 평정심에 어느 순간 길들여지는 것인지도..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간 속에서 체득한다.

          

어디로든 떠나 어디로든 돌아온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고 어디로든 다시 돌아온다.  생각 또한 어디로든 떠나 어디로든 돌아온다.

자판 위에 붙잡히지 않은 생각들도.........

언젠가는 돌아온다.

가을이다. 생각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하나도 호들갑스럽지 않다.     

평소대로. 늘 하던 대로 하루를 시작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갑자기 느껴지는 추위에 긴 셔츠를 하나 꺼내 입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최승자 시인의 말처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에 공감하며......

호들갑스럽지 않은 시간을 열고 있다.  

내게서 떠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오기 위해.

무수한 시간들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반복하면서...... 그런 것들에 길들여가면서. / 려원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려원 / 수필과 비평사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을 수혜 받던 날, 뜻밖에 주어진 문학적 성취에 큰 기쁨을 느꼈었다.

누구든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고  많은 고민들이 몰려왔다.  내 글이, 내 작품집이 그에 합당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사실 에세이라는 장르는 더욱 그러하다. 

'누구나. 쉽게?' 그러나 '누구나, 쉽게'란 말은

  '결코 쉽지 않음'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누구나 쉽게 작품집을 발간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물이 독자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다. 대중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 꼭 좋은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답게 썼고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썼다는 것에 위안을 느낀다.  

창작기금 수혜라는 감사함의 결과 작품집이 나왔고. 나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이 가을을 열고 있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호들갑스럽지 않게 '지금'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 보다 어디로부터 떠나는가를 호들갑스럽지 않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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