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눈물에는 슬픔이 들어있다

눈물의 온도와 눈물의 무게와 눈물의 중력을 아는가?

눈물은 왜 아래로 흐르는가.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다라고 했다.

양수. 엄마의 자궁, 생명이 잉태되고 그 생명이 터를 잡는 곳.

생명의 바다가 있다.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원시바다에서 기원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인가.

떨어지는 것. 눈에서 흘러 볼을 타고 아래로 떨어진다. 눈물샘에서 갓 만들어진 눈물을 따뜻하다. 그러나 한겨울 거리에서 흘리는 눈물은 금세 식어버려 훨씬 칼날처럼 날카롭게 뺨을 가른다.

눈물샘에도 계절이 있을까? 유난히 가을 무렵이 되면 눈물샘이 바빠진다. 누군가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이 나고... 오래전 들었던 음악을 우연히 다시 들을 때도 눈물이 난다.

잠복해있는 슬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신호가 되어 눈물샘을 자극한다.


시인들은 '눈물'을 노래했다. '눈물'은 언어인 셈이다.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눈물> / 김현승 부분 발췌


나의 웃음을 먼저 만드신 후에 새로이 눈물을 지어 주신 당신, 절대자에게 시인이 느낀 눈물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웃음 뒤에 주어진 눈물... 탄생의 기쁨과 죽음의 슬픔. 웃음과 울음의 경계에 눈물이 있다. 어디선가 읽은 더많이 춤을 춘 자는 더 많이 울게된다는 말이 떠오른다. 열정과 유희 뒤에 느끼는 슬픔은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지는 법이리라.


눈물아,

제발 멈추지 말아라

흘러라

계속

흘러라

끝까지 가보게

내장이 다 쏟아져나올 때까지

빈 껍질처럼 오그라들 때까지

- <눈물아> 이선영,『평범에 바치다』(문학과지성사, 1999)


눈물을 소리쳐 부른다. 제발 멈추지 말라고! 아직 내장이 다 쏟아져 나오지 않았노라고... 몸 안의 눈물이 다 터져나와 온 몸이 빈껍데기처럼 쭈글거리 때까지 멈추지 말아달라고 외친다.

몸 안의 체액이 '눈물'로 터져나올 정도의 슬픔이란 대체 어느 정도의 슬픔일까.

'적당히 울 수없는'시인에게 '적당한 슬픔'이란 단어는 없으리라. 마지막 남은 물감을 짜내듯 온몸을 비틀어 쏟아낸다. '눈물'은 슬픔의 뜨거운 결정체.


한 사람이 엎드려 울고 있다


울음을 멈추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 방울이 되어간다

- <눈물의 중력> / 신철규 / '시가 나를 안아준다'에 수록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받으려 한다. 손바닥을 모아 눈물을 모아본다. 흐르지 않도록.

그러나 어느 순간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눈물은 무거워진다. 두 손으로 받을 수 없을 정도의 돌덩이가 되고 마침내 눈물을 받으려던 사람은 눈물의 결정이 모여 만든 돌이 되고 만다.

돌 같은 눈물로 가득 찬 사람. 누군가 그의 몸을 두드리면 소금 결정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리라.

그 결정을 쪼개어 국을 끓이면 한그릇 가득 눈물로 채워지리라.


'눈물'을 노래한 시인들. 부서지고 무너지고 돌이 되고, 쪼그라들고....

눈물이란 결국 세상의 모든 언어. 투명하여 보이지 않으나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언어.



몇 년 전 수술을 앞두고 병원 창가에서 차 위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세상과 나는 격리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었던 것인지도.

나무는 왜 저리도 온몸을 흔들어 모든 것을 비우려 하는 것일까?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구어 버리는... 잎사귀와의 단절이 고통스러웠을 터인데.. 저 인연을 끊어버리는 일이 쉽지가 않았을 터인데.

차 위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갔고 바람은 쉼 없이 그 낙엽들을 쓸어내렸다.

나무와 바람의 덧없는 유희였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도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수업을 했다. 수업을 하면서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웃고 있었지만 공허한 웃음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꽤 긴 휴식에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가는 줄 알고 메시지를 보낸 이도 있었다. 여행이라면 여행일 것이다. 병원으로의 여행. 짧지만 두려운 여행.

병원에 누군가가 병문안을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화장기 없는 수더분한 얼굴에 환자복을 입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누군가가 복도를 걸어 돌아가는 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때 나는 눈물을 흘렸던가? 그 눈물이 차가웠던가? 뜨거웠던가?

지금은 기억 나지 않는다. 내 눈물의 언어를 그 가을의 바람은 알고 있었으리라.


부모님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 당황스러운 죽음이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이었다. 장례식에서는 어떤 슬픔도 표현하지 못하였다. 심지어 연출조차도 할 수 없었다. 장례라는 번거롭고 복잡한 절차는 진짜 슬픔을 드러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진짜 슬픔은 조금씩 서서히... 더디게, 느릿느릿, 야금야금 오는 것이었다. 마음의 장례식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버지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잔영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지우지 못하는 벽화다. 슬픔의 눈물이 그린 벽화, 박제된 벽화다.


시어머니의 마지막 몇 달을 함께 했다. 마른 몸이 더 말라서 어머니의 몸을 만지면 부석 거리며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전담 간병인이 있으니 꼭 그러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를 두고 돌아 나오는 마음은 편치 않았다. 출근하듯 병실에 들르고 점심 무렵이면 병원에서 나왔다.

하루 종일은 아니더라도 병상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공기에는 삶과 죽음이 적당한 농도로 섞여 있었다. 병실을 향해 갈 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병실에서 나와 병원 로비를 지나 출입문을 열 때 삶의 생기가 밀려왔다. 공기가 달랐다. 온몸에 덤빌 듯 다가오는 초록과 삶 내음이 나는 공기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달력의 숫자들이 무미해져 갔다. 조용한 죽음이었다. 맥박이 멈춰버린.... 그냥 잠든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 달려가던 새벽...... 밤하늘의 별이 총총했다.

어머니도 별이 되었으리라.. 인간은 초신성의 후예라고 누군가 말했듯 결국 우리는 별로 돌아가리라.


화장터...

유족으로부터 어머니의 관을 인계받은 검은 제복의 남자가 느릿느릿 걸어간다.

어머니의 관이 덜컹거리며...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가 누워있는 관이 덜컹거리며 가고 있었다.

그가 소리 내어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눈물이 났다. 그의 외침에..... 지상에서 어머니라 불린 여인이 들어있는 나무관이 하염없이 멀어지고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일. 그 마지막 순간 화장터 모니터에 숫자가 낯설었다.

네 자리 숫자가 화면에 뜨고 진행 중이라는 메시지가... 또 다른 화면에서는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사람이 사라지는구나.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 뜨겁고 펄떡이던 몸이 재가 되는구나.

작은 유골함에 온기가 느껴졌다........ 다만 사람이 온기가 아니었다. 사람의 몸을 태워버린 이글거리는 화장터의 불꽃이 만들어낸 열기였다.

눈물... 불꽃. 재... 사라짐.........

장례식에서 수없이 눈물을 쏟는다. 겉으로 울지 못할 때는 마음이 먼저 울었다. 그 때의 눈물의 온도를 생각한다. 타올랐던가? 얼어붙었던가? 온몸의 진액을 눈으로 다 쏟아내었던가? 눈물의 무게를 생각한다. 손으로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 엎드려야 했던가?



가을이다.. 며칠 전에도 부고를 전해 들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짧고 간단하고 건조한 '부고' 메시지로 누군가의 생이 정리된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요즘 사람들은 큰 병을 앓지 않고 편안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호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죽음 앞에 ‘호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해서도 안된다.

좋은 삶은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더 슬픈 일이 아닌가.....

'호상'이라는 말에 마음이 더 아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약해진다.

강해지고 싶었던 나. 자존심 때문에 마음껏 울지도 못하였던 나는 가을 하늘이 너무 파래서 울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도... 자기보다 더 큰 먹이를 지고 뒤뚱거리는 개미의 가는 허리에도.... 눈물이 난다. 그저 눈물이 난다.

모든 떨어지는 것들

모든 흘러내리는 것들 속에

사람들의 시간이 섞여있다.

붙잡고 싶었던 것들과 아쉬움들과.... 서러움 같은 것들이... 아래로 아래로 눈물과 뒤섞여 떨어진다.

눈물의 중력이란 어마어마한 것이란 사실을............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끝없이 놓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계절이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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