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진 새는 없다

겨울을 이기고 생의 무게를 견딘 새.....

지난겨울 눈이 내리던 날.... 식당 앞 메마른 화분 앞에 먹이를 구하던 한 마리의 새.

나는 그때, 눈보라를 피할 곳 없이 지치고 병들어 보이는 그 새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 미사에 가는 일보다 더 거룩하다고 적었다.

혹한의 날씨, 밤새 퍼붓던 눈보라 그 새의 영혼은 하늘로 고통 없이 올라가기를 기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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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이 오기 전 출간 예정이었던 책을 살펴보느라 창가에 내려앉은 봄을 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여름이 오기 전 모든 작업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일정이 당겨지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내는 일은 별개의 작업임을 실감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작열하는 태양,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질식할 것만 같은 도시의 여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강렬한 태양 때문이라 했던 말이 해마다 여름이 되면 생각난다. 오늘의 태양도 뫼르소의 눈을 찌르던 날카롭고 강렬한 태양이다.

여름을 느끼고 있다. 봄의 환희를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보내버리고 갑자기 다가온 여름 앞에선 무기력하다. 태양 때문이라고. 그 모든 것이 태양 때문이라고 중얼거리며

지난겨울 그 새를 보았던 식당 앞을 걷고 있었다.

죽은 것처럼 보이던 화분에 초록의 생명들이 돋아났다. 초록 잎들 사이 빨간 눈의 새 한 마리가 먹이를 구하고 있다, 듬성듬성 털이 빠지고 곧 죽을 것처럼 비틀거리던 바로 그 새였다. 직감적으로 나는 지난겨울 만난 바로 그 새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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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를 이기고 혹한의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새. 깃털은 윤기가 있어 보였다.

아무도 돌보는 이 없어도.... 가냘픈 두 다리와 털이 듬성듬성하던 빈약한 날개로.. 혹독한 세상의 한 구석에 생명을 심었다.


라이너 쿤체의 시 < 뒤처진 새 > 생각이 났다.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 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지난겨울 그 새는 뒤처진 새처럼 보였다.

철새는 아니었고 텃새였지만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먹이를 구하는 뒤처진 새.

날 수 있는 날개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 날개는 찬란하지 않았고 빨갛고 가는 두 다리로 지탱하기에도 버거운 짐처럼 보이던 날개.

그 새는 살아남아 온통 연두로 가득한 화분 위에서 먹이를 구하고 있다. 살이 오른 몸.

뒤처진 새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강한 새였다.


7월 여름의 한 복판에 서있다. 뫼르소의 눈을 찌르던 그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나는 또다시 쿤체의 < 종말의 징후 >라는 시의 한 구절을 읊조린다.


"칠월인데

나무들이 잎을 떨구었다

수북한 초록 잎을 철벅철벅 헤치며

우리는 여름을 밟았다..... "


뒤처진 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삶을 이기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어정쩡하게 삶에 끌려가느니 삶을 끌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무모할 정도의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뒤처진 새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무엇에? 그리고 누구에게? 뒤처진다는 말일까?

생은 자기만의 레이스인 것인데..... 뒤처질 이유도 없고 뒤처지지도 않았다

빠르지도 않았지만 느리지도 않았다. 자기 만의 속도로......

지난겨울. 나는 마치 겨울의 끝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었나 보다. 지친 새를 내 맘대로 애도하고.... 그 새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새는 살아남아 두 다리와 날개로, 보란 듯이 한 여름의 태양 아래 서있다. 새 앞에 멈춰 선 나는 무력하게 새의 사진을 찍는다... 올 겨울엔 알량한 애도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정작 돌보아야 할 것은 지친 새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세상에 살아남은 새는 있어도 뒤처진 새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면서.

이 강렬한 7월의 서두. 7월의 둘째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7월이 가기 전...... 해야 할 일들을 적으며... 뜨거운 여름을 밞고 있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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