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쏘아버린 화살을 생각한다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정지용의 시 ‘향수’에 곡을 붙인 노래가 자주 들려온다.
평소에는 다가오지 않는 어떤 그리움의 정서가 바닥 밑에서 올라오는 시기인 셈이다.
얼룩백이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소리도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도, 질화로의 재가 식어가는 밤, 밤바람 소리가 말을 달리는 밤도
경험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어김없이 추석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엘 갔었던 기억이 난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진 들녘과 따가운 햇살,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들.
허수아비와 참새들의 춤을 기억한다. 황금빛으로 물결치던 들판, 곧 떨어질 흐드러지게 열린 주홍빛 대봉. 회색빛 담장에 드리운 그림자들. 유년의 기억이 지금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추석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을 뒤적이던 ...
정지용의 시에서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화살을 쏘던 기억이 있을까 생각한다.
하늘은 넓고 높았고 푸르렀고 닿을 수 없는 곳처럼 여겨졌다.
그곳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돌아보면 함부로 쏜 화살들도 많았다. 어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모한 그러나 당차게 당기지도 못한 활시위... 화살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파아란 하늘빛 어딘가에 닿으려던 나의 지난날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
함부로 쏜 화살 같은. 제대로 목표를 겨누지도 못하고 시험 삼아 혹은 재미 삼아 혹은 의지와 상관없이 얼떨결에 그렇게 수없이 활시위를 당겼으리라.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는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줍는다. 분을 칠할 겨를도 없이 사시사철 발 벗은 채 들녘으로 달려갔을 아내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 시대 여인들의 보편적인 모습이 아닐까. 흙에서 태어나 흙의 마음을 품고 흙과 더불어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아내는 흙을 닮았으리라. 흙의 얼굴과 흙의 마음과 흙의 목소리를 지녔으리라..
화자는 하늘에는 성근 별이 뜨는 밤.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긴다.
모래성. 쌓고 허물어지는 것. 허물어질 것을 알면서도 쌓는 것.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긴다. 누가 쌓았는지, 누가 허물었는지 알 수도 없는......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추석이면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들. 모든 것들이 모래성처럼 흩어지고 사라져 갔다.
아버지를 따라 그 가을에 걷곤 했던 시골길, 해질 무렵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났었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꺼내 주던 큼직한 계란찜 맛을... 아직 기억한다. 구부러진 산길을 따라 누구의 묘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무덤 앞에서 절을 하고, 도토리나 솔방울 , 밤을 주머니가 불룩하게 주웠던 기억....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풀을 헤치며 앞서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도...
20대의 추석은 쓸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햇살이 내리쬐는 마루. 아버지의 검은 구두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차마 버리지 못한 구두였다. 그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담을 넘어 어딘가에서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안부인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새벽이면 일어나 어김없이 추석상을 차렸지만 쓸쓸한 추석이었다.
추석날 아침이면 음식 냄새에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들이 가릉 거리며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파트 화단에서 예초기 소리가 들려온다. 벌초 대행업체가 아침부터 와서 작업 중이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풀들의 몸에서 푸릇한 향기가 번져온다. 이 또한 사라지고 흩어지는 것들이다. 아버지 고향 선산의 벌초 작업도 벌초대행업체의 손에 맡긴 지 오래다.
보름달이 뜰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유년으로 돌아가 바라보던 보름달과 오늘 밤 내가 창문으로 바라보는 보름달은 같을 리 없다. 그럼에도 달은 뜨고, 어김없이 추석은 온다.
정지용의 ‘향수’ 노래를 들으며 나는 갈 곳 없는 사람처럼 ‘고향’ 생각을 한다.
나의 고향은 정지용의 향수에 등장하는 그런 목가적인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그 시골길이 머릿속에 상상 속 고향으로 각인되어 있다.
추석이 다가올때면 들려오는 '향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갈 데 없는 실향민의 마음이 되어 유년의 기억들을 되풀이하여 꺼내곤 한다. 오늘도 그런 아침이다./ 려원
내가 존재하는 것은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그 물음에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세상이 주는 답에 따라 살뿐이다.
- 칼 융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을 썼던 이유도 아마
나 자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또한 삶이 나에게 묻고 있는 것에 대하여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그 답을 찾았을까?
아직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