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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파울 클레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하며

무겁고 귀한 존재가 되어             

신의 기운으로 충만한 저녁에 기운다.

이제는 푸른 하늘에 에워싸여

만년설 위를 떠돈다

별을 찾기 위해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파울킅레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캔버스에 시를 쓰는 화가란 생각을 한다.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빛과 어둠과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 , 뾰족함과 뭉툭함,  동그라미와 네모.. 

채도와 명도가 다른 파랑과 초록과 빨강과 갈색과 노랑들.... 사이사이에 있는 글자들.

글자들의 배열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클레는 아마도 어떤 의미를 숨겨놓았으리라.

햇볕 내리쬐던 유년의 담벼락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의 제목이 '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라니..

그가 아니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을 법한 아름다운 제목을 붙여놓았다.

이른 새벽 창문을 통해 어둠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밤의 깊은 회색은 가고 검푸른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는 것을...

그리고 검푸른 저녁을 지나 밤의 깊은 회색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을... 그렇게 돌고도는 것을..

지구도 그렇게 돌고 있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클레의 말처럼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하며

무겁고 귀한 존재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강렬하게... 무겁고 귀한 존재로 스스로를 인정하면서


   


이 작품은 '나무가 있는 율동적 풍경 속의 낙타'이다.

어쩌면 낙타가 있는 율동적 풍경 속의 나무를 그린 것처럼도 보이는데..

작품의 핵심은 기하학적 무늬 속에 숨은 낙타  한 마리다.

사막을 횡단하지 못하고 낙타는 어딘가의 담벼락, 나무들 사이 갇혀있다. 그럼에도 낙타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무언가 홀가분하게 보이는 것은 색색깔의 나무들이 주는 부드럽고 동화적이며 따뜻한 느낌 때문일까.

      


<파울 클레의 관찰일기 >    

사랑이나 이별의 깨끗한 얼굴을 내밀기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의 신은 공중화장실 비누 같이 닳은 얼굴을 하고서 내게 온다

두 손을 문지르며 사라질 때까지 경배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다     

전쟁과 전쟁의 심벌즈는 내 유리 손가락, 붓에 담은 온기와 확신을 깨버렸다.

안녕 나의 죽은 친구들

우리의 어린 시절은 흩어지지 않고

작은 과일나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그 시절 키 높이만큼 낮게 흐르는 구름 속으로 손을 넣으면

물감으로 쓸 만한 열매 몇 개쯤은 딸 수 있다, 아직도     

여러 밝기의 붉은색과 고통들

그럴 때면 나폴리 여행에서 가져온 물고기의 색채를

기하학의 정원에 풀어놓기도 한다     

나는 동판화의 가는 틈새로 바라보았다

슬픔이 소녀들의 가슴을 파내는 것을

그들이 절망을 한쪽 가슴으로 삼아 노래를 쏘아 올리는 것을     

나는 짧게 깎인 날개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조금씩 부서지는 누런 하늘의 모서리

나쁜 소식이 재처럼 쌓인 화관을 쓰고     

나는 본 것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영원히 날아가려 했다

폼페이의 잔해 더미에 그려진

수탉들처럼     

어찌할 수 없는 폭풍이 이 모든 폐허를 

들어 올릴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 절망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 때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고     

(.....)     

슬픔으로 얼룩진 내 얼굴과의 경쟁에선 번번이 패배했다     

그때마다 나는 세네치오를 불렀고

부화하기 전의 노른자처럼 충혈된 그가 왔다     

                - 진은영 -


우리의 어린 시절은 흩어지지 않고

작은 과일나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그 시절 키 높이만큼 낮게 흐르는 구름 속으로 손을 넣으면

물감으로 쓸 만한 열매 몇 개쯤은 딸 수 있다, 아직도     

여러 밝기의 붉은색과 고통들........


우리의 어린 시절은 흩어지지 않고 작은 과일나무 언저리에 머물러있다.... 아직도 손을 내밀면 쓸만한 열매 몇 개쯤은 딸 수 있다... 또한 " 인간은 어떻게 그 절망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 때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절망에 이른 원인을 안다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명쾌히 답할 수는 없지만

절망에 이른 원인을 안다면 절망 속에서 벗어날 방법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파울 클레의 그림이 어울리는 11월이다.

화가의 그림 한 장이 스산한 계절을 다독여준다.  누구든 나무가 있는 율동적 풍경 속의 한 마리의 낙타 들일 테니까. 어디를 향해가든. 어디에 있든. 무엇을 위해서든..........

동화적인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흩어지지 않은 것이리라.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인생의 어느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바라보는 하늘이 터널 속에서 갈망하는 하늘인지, 터널은 거쳐온 뒤의 하늘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살아가면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고 있다는 것....   제2부 존재의 자국들 



이 글을 쓰던 날의 화두였던 "인생의 어느 시기를 관통하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을 여전히 던지고 있다.

햇살 고운 11월.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불꽃처럼 강렬하게 타오르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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