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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인형들에게 묻다
나와 가고 싶니?

쓸모를 따지기엔 지나치게.....

버려진 인형들의 꿈

영화 토이스토리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일까... 인형들. 특히 인형들의 눈을 보면 무언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릴 때 나는 유난히 털이 부슬거리는 인형을 좋아했다. 곰인형이든. 다른 동물 인형이든... 그것들이 낡아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동물 인형 가게 앞에서 저걸로 발걸음이 멈춘다.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동물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의 아이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물 인형을 사고 싶은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하는 ‘어린 나’ 때문이다.


집 여기저기에 작은 인형들이 많다. 털 달린 것들은 먼지가 내려앉아 금세 더러워지지만 가끔 그것들을 통째로 세탁기에 넣어 햇볕 좋은 날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놓으면 뽀송해진 인형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가면서 쓸모를 따지자면 그 인형들은 내게 쓸모없는 것들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인형들과 함께한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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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어릴 적... 그 아이와 인형을 사러 인형가게에 가면 수많은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복슬복슬 양털로 뒤덮인 양 인형을 사고 싶어 했다. 쌓인 양 인형 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 카트에 담으면 될 것 같은데... 양 인형을 고르는 딸의 표정이 진지했다. 꽤 오래 걸리는 듯하여 “아무거나 데리고 가자.”라고 하니 딸은

“엄마, 지금 양 들에게 물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고 싶은지를.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5살밖에 안 된 딸을 경외스럽게 바라보았던 생각이 난다.

마침내 우리와 함께 가고 싶다는 양 인형이 나타났는지 조심스럽게 그 양 인형을 카트에 모셨다. 그 인형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 딸은 슬프거나 화가 난 일이 있으면 그 양 인형에게 하소연하는 듯했다. 양 인형은 딸의 하소연을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솔기가 터지고 낡아 볼품없어질 때까지 함께 했던 그 인형. 인형들에게도 선택의 결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말... 그 말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아침에 분리수거를 하러 재활용 쓰레기장에 갔다. 누군가가 버려둔 인형들이 있었다.

버렸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깨끗해 보이는 인형들... 인형들이 나란히 분리수거장 담에 앉아 있었다. 그 인형을 가져다 둔 이는 차마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인형을 두고 갈 수 없었는가 보다. 북극곰, 펜더, 강아지, 펭귄, 고릴라.... 고릴라 인형은 덩치가 아주 컸고 나머지는 크기가 15 cm 정도였다. 회색 날개, 새하얀 가슴, 노란 부리, 검은 눈동자가 눈에 박혔다. 펭귄 인형이 분리수거를 끝내고 돌아서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돌아서서 펭귄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딸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나도

“나와 함께 가고 싶니?”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펭귄 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에 떠는 펭귄 인형을 두툼한 패딩 주머니에 넣고 무슨 보물이라도 횡재한 듯 서둘러 집으로 올라왔다.

집안의 다른 인형들도 세탁할 시기가 되어 함께 세탁기에 넣고 울 세탁을 한다... 동물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까르르 웃고 있다. 새로 온 펭귄을 보며 무슨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


버려진 인형들... 몇 달 전 역시나 누군가가 아이들이 다 자라서 쓸모없어진 커다란 곰인형을 버려두었다. 상당히 커서 몸집이 유치원생 정도였는데.. 크기가 부담스러워서였는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며칠 째 그곳에 있었다. 마침 비까지 내려서 뽀얗고 예쁜 하얀 털이 비에 젖었다. 낙엽이 내려앉고 그위로 도시의 먼지들이 쌓였다. 그 며칠 사이 뽀얀 곰 인형은 도시의 노숙자처럼 변해버렸다. 비를 맞으며 앉아있는 곰 인형의 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그 곰 인형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버려졌으리라. 커다란 쓰레기봉투 안으로.

인형들.... 나도 언젠가는 인형들을 하나 둘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인형들을 여전히 품고 사는 나... 내 안의 ‘어린 나’가 여전히 인형들을 품고 싶어 한다. 당분간은 어쩔 수 없다.

베란다 건조대에 동물 인형들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 중이다. 새로운 펭귄이 그곳에 있다. 또 하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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