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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도살장/ 인생... 뭐 그런 거지.

커트 보니것, 드레스덴과 트랄파마도어 그리고 순간과 현재

"뭐 그런 거지..."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

  

들어보라

빌리 필그램은 시간에서 풀려났다

빌리는 노망이 든 홀아비로 잠이 들었다가 결혼식 날 깨어났다

1955년 하나의 문으로 들어갔다가 1941년 다른 문으로 나왔다.

그 문으로 다시 들어가니 1963년의 자신이 나왔다. 자신의 출생과 죽음을 여러 번 보았다.

그 사이의 모든 사건과 무작위로 만난다.

.. 빌리는 시간 속에서 경련성 마비를 일으켜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할 수 없다. 이 여행이 꼭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다. 늘 무대 공포증이 있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 다음에는 인생에서 어떤 역을 연기해야 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커트 보니컷의 소설 『제5도살장』은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새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빌리 필그램에게 말했다. “지 지배배뱃?”'으로 끝난다.

소설의 시작과 끝 사이 1인칭 화자가 등장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드레스덴 폭격에 살아남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실제로 저자인 커트 보니것은 독일군의 마지막 총공세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고 소설대로라면 전쟁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소설의 주인공 빌리와 포로 생활을 했다. 『제5 도살장』의 바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이지만 빌리의 아들 로버트가 그린베레가 되어 베트남전에  투입된 설정으로 베트남전에 대한 내용도 부각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반대 분위기 속에서 『제5도살장』이 대중의 호평을 받았으나 그렇다고 드레스덴의 운명과 베트남의 운명이 같다는 식으로 연결 짓지는 않았다.  

    

“ 내 생각에 책의 클라이맥스는 가엾은 우리 에드거 더비의 처형이 될 것 같아.(...) 엄청난 아이러니잖아.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어. 그런데 미국인 보병 한 명이 폐허 속에서 찻주전자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어. 그런 뒤에 정식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총살대에게 처형됐잖아”

  (p 15~16)     


 소설 구조가 어수선하게 전개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파탄과 비행기 사고로 정신이 혼란스러운 빌리 자신이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하고 화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구조여서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공상 과학적 요소 트랄파마도어 부분은 전쟁과 현실 사이에 너머의 세계까지 확장된 것으로 더더욱 읽기에 혼란스럽다. 

이 책에서는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등장하는 "뭐 그런 거지?"라는 표현이 총 106번이 나온다. 

“뭐 그런 거지?”는 체념적 수동성을 드러내는 말처럼 들리기에 과연 커트 보니컷이 반전 메시지를 명쾌하게 내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거슬렸던 부분이 사실 “뭐 그런 거지?”라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냉소적이고 체념적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말투가 번역 탓이려니 했는데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공감이 가는 말투였다.

작중 인물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빌리가 무기력하게 뱉는 말. 106번이나 나온다는 그 말."뭐 그런 거지?"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뭐 그런 거지?”라고 뱉어버리는 일이 오히려 치유의 방법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 맞설 수 없다면, 그 상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없다면 “뭐 그런 거지?”는 그 상황에 꼭 어울리는 마법의 말이다. 비겁한 체념의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러할 수밖에 없는 말.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의 마지막문장도 “지지배배벳”으로 끝난다. 새의 말이다.

새의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는 의미다.   

이 작품은 <타임>에서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에 포함되기도 했지만 반미국적, 반기독교적, 반유대적, 비도덕적이안 이유로 청소년 유해소설로 취급당하기도 했다. 

반문화의 작가, 이단아... 그럼에도 커트 보니컷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남아 오늘날의 우리를 붙잡는다.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돌며 여행한다. 제2차 세계대전 벌지 전투의 독일군 전선 후방으로, 포탄이 쏟아지는 드레스덴의 도살장으로,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으로, 뉴스가 넘치는 뉴욕으로, 수소폭탄 공격을 받았다 재건된 시카고로. 유쾌하고 황당한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비관론과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희망. 오직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반전(反戰) 소설이다.     

전쟁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제5도살장>은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한다. 소설 안에서 평화를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사상적인 표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전쟁의 참극을 결코 노골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잿빛의 달 표면, 위태롭고 고르지 못한 곡선, 돔을 이루고 있는 돌과 목재로 이루어진 레이스. 시간과 공간을 어지럽게 넘나드는 이야기 안에서 드레스덴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주인공인 빌리가 겪은 드레스덴 폭격 또한 매우 무덤덤하게 그려진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P 191

행렬은 껑충거리며, 비틀거리며, 휘청거리며 드레스덴 도살장 정문으로 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독일의 발굽 달린 동물은 거의 모두 인간들, 그 가운데서도 주로 군인들이 죽이고 먹고 배설했다. 뭐 그런 거지.

미국인들은 정문 안의 다섯 번째 건물로 이끌려갔다.  시멘트벽돌로 지은 네모난 단층 건물로, 앞뒤에 미닫이 문이 달려있었다. 곧 도살할 돼지들을 가두어두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이제는 미군 포로 백 명을 위한 집 역할을 할 것이었다.  건물 문에는 커다랗게 번호가 적혀있었다. 5였다. 미국인들이 안에 들어가기 전에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경비병이 큰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간단한 주소를 외우라고 말했다. 그 주소는 ‘ 슐라흐토프-퀸프’였다. 슐라흐토프는 도살장이란 뜻이고 퀴프는 너무도 친근한 5였다


P 205

드레스덴 공습 사이렌이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

도살장아래 천연석을 파서 만든, 소리가 왕왕 울리는 고기 저장소로 피신했다. 

저장고 쇠갈고리에 소와 양과 돼지와 말 몇 마리가 걸려있었다. 뭐 그런 거지. 그것 말고 빈 갈고리가 수천 개 더 있었다.

     

도살장. 제5도살장이 포로들의 집단 주거지가 되었다. 곧 도살할 돼지들을 가두기 위해 지은 건물. 발굽 달린 동물을 죽이고 먹는 사람들. 뜨거운 물에 삶아지는 사람들, 폭격으로 온몸이 벌집이 된 사람들... 죽음을 대기하는 곳. 제5 도살장. 그러함에도 그곳에서 삶을 이야기한다. 제5도살장에서 곧 도륙될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P 223

드레스덴은 1945년 2월 13일 밤에 파괴되었어. 우리는 그 다음날 대피소에서 나왔어...

건물들은 무너졌고 목재는 타버리고 석재는 무너져내려 서로 부딪치며 굴러 떨어지다 마침내 밑에서 맞물리면서 낮고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달 표면 같았어.      

P 263

그날 아침 전쟁포로가 드레스덴의 이런저런 장소로 모였다. 이곳이 주검을 파내는 장소로 선포되었다. 빌리는 마오리 말을 쓰는 사람과 짝이 되었다. 많은 구멍을 동시에 팠다. 뭘 찾아낼지 아무도 몰랐다.... 마침내 서로 쐐기처럼 맞물려 우연히 돔을 이루고 있는 돌들 위에 레이스처럼 얽힌 목재들로 이루어진 얇은 막에 이르렀다. 그들은 막에 구멍을 내었다. 그 밑으로 어둠과 공간이 있었다. 손전들을 든 독일 병사가 어둠 속으로 내려가더니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았다. 병사는 상급자에게 시체 수십구가 있다고 말했다. 시체들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혀 시체 같은 느낌이 없었다. 뭐 그런 거지..

이렇게 해서 드레스덴 최초의 시체 채굴이 시작되었다.

곧 시체 광산이 수백 개 생겨났다. 처음에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시체들은 밀랍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시체들은 썩고 녹기 시작했고 악취는 장미와 겨자탄 냄새 같았다.

뭐 그런 거지...

빌리와 함께 일하던 마오리인은 악취 속으로 내려가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후 헛구역질을 하다 죽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갈가리 찢으며 토하고 또 토했다.

뭐 그런 거지

그래서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제 시체를 위로 끌어올리지 않았다. 화염방사기를 든 병사들이 시체들을 있는 자리에서 화장해 버렸다.... 그곳 어딘가에서 늙은  고등학교 선생 에드가 더비가 지하묘지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왔다가 들켰다. 그는 약탈죄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총살을 당했다. 뭐 그런 거지..

또 그곳 어딘가에 봄이 있었다. 시체 광산은 폐쇄되었다.... 빌리와 나머지 사람들은 교외 ㅁ구간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빌리와 나머지 사람들은 어슬렁어슬렁 걸어 그늘진 거리로 나갔다. 나무들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거리를 오가는 것은 전혀 없었다. 탈 것이라고는 딱 하나,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가 버려져있을 뿐이었다. 마차는 녹색에 관 모양이었다. 새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빌리 필그램에게 말했다 “ 지지배배뱃?”         


커트 보니컷의 『제5도살장』에는 책 속의 책이 등장한다      

찰스메카이가 쓴 특이한 『특이한 대중적 망상과 군중의 광기』에서

“역사의 엄숙한 페이지에 기록된 것을 보면 십자군 병사들은 무지하고 야만적인 사람들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동기는 편협하기 짝이 없고 그들의 길은 피와 눈물로 얼룩져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전쟁. 명분 없는 싸움. 몸만 커버린 소년 십자군들. 

결국 모든 전쟁은 피와 눈물의 역사다.

              

* 시어도어 레트키가 쓴 <바람에 실려온 말> p36

자려고 깨어나, 나의 깨어남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두려워할 수 없는 것에서 내 운명을 느낀다

가야만 하는 곳에 감으로써 배운다.     

가야만 하는 곳에 감으로써 배운다... 우리의 삶은 가야만 하는 곳에 감으로써 배우는 과정일까.

가고 싶지 않은 데 가야만 하는 곳... 우리의 자유의지와 현실의 괴리 같은 것.                   



"강변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어원을 가진 드레스덴 Dresden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2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폭격으로 도시의 90%가 폐허가 되었다. 1945년 독일의 마지막 공세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연합군이 동서 양방향에서 베를린으로 진군을 재개하였다.

처칠에 보고된 비밀문서에 만일 독일군이 최대 40여 개의 사단을 동부전선으로 투입할 경우 전쟁은 장기화될 수 있을 것이므로 소련의 진격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처칠은 최종적으로 드레스덴을 융단폭격 하기로 결정을 하고 스탈린의 동의를 받아 공습을 준비한다. 1945년 2월 무렵 드레스덴에는 소련군을 피해 동쪽에서 피난온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있었으며 건축과 예술이 가장 아름 다운 도시중 한 곳이며 게다가 약 26,000명의 연합군 포로들이 인간방패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 독일군들은 대공포를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켜 버렸다.     

1945년 2월 무려 800대의 폭격기로 드레스덴에 대한 융단 폭격이 시작이 되었다.

1차 공습 랭커스터 224대   2차 공습 랭커스터 529대, 밤에는 영국의 랭커스터가 낮에는 미국의 B-17 폭격기가 무려 4,000톤의 포탄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었다. 드레스덴 도시의 90프로 이상을 파괴했으며 소이탄에 의한 최대 1800'C의 열폭풍이 수만 명의 인명을 빼앗아 갔다. 

당시 목재 건축물이었던 드레스덴의 건축물은 순식간에 불타버린다. 폭격기의 이름은 블록버스터이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블록버스터라고 하는데 이 폭격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블록(도시) 버스터 (날리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트랄파마도에 행성과 관련된 흥미로운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지구인을 연구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나는 우주의 유인행성 서른 한  곳을 찾아가 보았고, 그 외에도 백 개 행성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를 이야기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인간을 다리가 둘 달린 생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커다란 노래기로 본다. 한쪽 끝에 아기 다리가 달려있고 다른 쪽 끝에 노인 다리가 달려있는 노래기라고 본다.

커다란 노래기. 한쪽에는 아기 다리, 다른 한쪽에는 노인의 다리가 달린 커다란 노래기가 자유의지를 이야기한다.. 아기와 노인... 끝과 끝. 아기에서 노인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때로 우리를 짓밟고 우리는 자유의지 때문에 짓밟히지 않기도 한다. 커트 보니컷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p 43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순간이 영원하다는 것을 봐서 알고 있고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어떤 순간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마치 줄로 엮인 구슬처럼 어떤 순간에 다음 순간이 따르고 그 순간이 흘러가면 그것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길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죽음... 누구나 피할 수 없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 책의 156쪽에 등장하는 묘비명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이런 묘비명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달관한 사람이거나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트랄파마도어인은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으로 본다. 모든 순간의 영원함... 


어렵고 난해하면서도 공상과학적이고, 냉소적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기묘한 책.

성적인 언급 또한 저자 특유의 재치겠지만 다소 불편한 표현들이 많았다. 게다가 오늘날에 맞지 않게 여성의 외모비하 같은 표현.... 빌리의 아내는 너무 뚱뚱해서 아무도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거나...  책 부분 부분에 등장하는 거칠고 거슬리는 표현들을 그냥 넘기는 것은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저자 목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커트 보니컷이 이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은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전쟁'을 감행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만일 어떤 이유로든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면 미치지 않으려면 "뭐 그런 거지"라는 마법의 말을 수시로 뱉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고등학교 교사인 에드가 더비가 죽은 시신들의 집에서 찻주전자를 훔쳐 나오다 총살형에 처해진 것은 압권이다. 죽은 이들의 집에서 훔친 찻주전자와 그로 인해 죽은 에드가 더비... 

전쟁 중에도 살기 위한 어리석은 몸부림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을까.'

뭐 그런 거지.. 나도 빌리 필그램의 말을 흉내 내어본다.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한 마법의 말.... 

나를 슬프게 하거나 나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뭐 그런 거지' 한 마디면 된다는 사실을.../려원


*참고 문장들 

첫 문장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P. 28~29

“두 사람은 전쟁 때 아이에 불과했다고요? 위층에 있는 저 애들처럼!”

나는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실제로 전쟁 때 어리석은 숫총각들이었으며, 유년의 맨 끄트머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쓰지 않을 거죠, 그렇죠.”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비난이었다.

“어?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P. 33

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P. 44

트랄파마도어인은 주검을 볼 때 그냥 죽은 사람이 그 특정한 순간에 나쁜 상태에 처했으며, 그 사람이 다른 많은 순간에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트랄파마도어인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한다. ‘뭐 그런 거지.’

P. 82

빌리는 진료실 벽에 기도문을 넣은 액자를 걸어두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는 데 열의가 없음에도 계속 살아가는 그 나름의 방법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벽에 걸린 기도문을 본 많은 환자가 그 기도문이 자신들이 계속 살아가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P. 140

우주의 방문객은 기독교를 진지하게 연구했다. 기독교인이 그렇게 쉽게 잔인해질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는 적어도 문제 가운데 일부는 신약의 이야기가 너무 엉성한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처음에는 복음서들의 의도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낮은 자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자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복음서들은 실제로는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을 죽이기 전에 반드시 그가 연줄이 시원찮은지 확인해라. 뭐 그런 거지.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2022 아르코문학 나눔 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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