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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TS 엘리엇의 시 <재의 수요일> 중에서... 그러나 나는 희망할 것이다

엘리엇은 그의 시 <재의 수요일>에서 “희망하지 않기에”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

어쩌면 시라기 보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처럼 여겨지는 말들..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희망하지 않기에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기회를 탐내는 일

더 이상 이런 것들을 얻으려 애쓰지 않기에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

여느 통치의 권력이 희미해진다고

슬퍼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다시는 알리라 희망하지 않기에

또렷했던 날의 허약한 영광을

단 하나의 참다운 힘도 덧없음을

알지 못하리라고 알기에

거기, 나무가 꽃피우고, 샘이 흐르는 곳에서

마실 수 없기에

다시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기에

시간은 늘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

실재는 한순간만 실재하고

한 자리에만 있음을

알기에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중에서 일부 발췌 /T.S. 엘리엇     


재주와 기회를 더 이상 탐하지 않기에...

더 이상 이런 것들을 얻으려 애쓰지 않기에... 희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참다운 힘도 덧없는 것이고 나무가 꽃피우고 샘이 흐르는 곳에서 마실 수 없기에

다시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는... 시간은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이라고....

결국 실재한다는 것은 순간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시인은 희망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관되게 희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외치지만 그의 시를 읽는 우리는 왜 간절한 희망의 목소리로 듣는 것일까.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기 위하여...'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음을 희망하기 위하여.... 


이 날개들은 더 이상 날지 못하기에

공기만 부딪히는 날갯죽지일 뿐

이제는 너무나 작고 메마른 공기

의지보다 작아지고 메마른 공기

마음 쓰고 마음 쓰지 않도록 가르쳐 주시라

가만히 앉아 있도록 가르쳐 주시라     

마음 쓰고 마음 쓰지 않도록 가르쳐 주시기를.

가만히 앉아 있도록 가르쳐 주시기를


이미 날지 못하는 날개엔 공기 방울만 부딪힐 뿐... 그 날개로 다른 희망을 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하나?)고 묻는다.

그러나  늙은 독수리도 날개를 펴야 한다고...... 그에게 답해주고 싶다.

독수리에게 왜 날개를 펴야 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독수리로서의 삶을 부인하는 것이 아닐지.... 늙은 독수리건 젊은 독수리건....

날지 못하는 날개를 퍼득이는 것은 희망조차 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기에 시인은 그리 적은 것일까?


가톨릭 교회에서 재의 수요일이 되면 예배자들은 지난해 종려주일 때 사용한 종려나무잎을 태워 얻은 재로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받는다. 

“사람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는 의미를 품은 재의 수요일.... 

미사에 가서 이마에 재의 십자가를 받던 날, 이상하게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나의 신앙도 코로나를 핑계 삼아 무디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오래전 어느 해 재의 수요일..... 이마에 그려지던 재의 십자가 앞에 언젠가는 재로 돌아갈 몸을 생각했다.


TS엘리엇의 시 제목이 <재의 수요일>인데 시에서 일관되게 ‘희망하지 않기를’ 원한다. 

재가 될 사람들. 희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


나희덕 시인의 <진흙의 사람> 이란 시에도

" 우리는 오래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 

그것으로 빚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진흙이 마르는 동안  갈라지는 슬픔 또한 기다리고 있으니"라는 부분이 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재의 십자가를 이마에 그리며 '희망하지 않기를'다짐하는 것일까.

헛된 희망을, 부질없는 것들을, 탐욕적인 것들을, 무언가를 탐함으로 인하여 누군가를 괴롭힐 수 있는 것들을 희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2월이 끝을 향해간다. 부지런하지 못한 날들이었다. 돌아보면....

엘리엇 시인의 충고와는 별도로 나는 여전히 희망해야 한다. 다가올 3월..... 설령 날개를 펼 수 없고 그 빈약한 날개에 와서  부딪는 것이 몇 줌의 공기입자이며 바람 몇 조각일지라도..... 날개를 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련다...

그런 마음으로 새 봄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영어의 'MAN'과 'Human'은 '흙'이란 뜻의 라틴어 ' humus'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어원이 습기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흙에서 시작하여 흙으로 돌아갈 인간의 운명을 보여준다. 흙의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며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인간이다. p36

(.....) 습기가 사라진 진흙 사람이 쉽게 부서지듯 습기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쉽게 무너진다.

사람다움이란 습기를 품는 것, 촉촉해지는 것, 눈물의 가치를 아는 것,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껏 울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 눈물의 힘을 믿는 자에겐 언제든 누군가를 위해 실컷 울 수 있도록  몸 안에 바다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p 39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제1부 존재의 의미 찾기 / 메마른 시간과 습한 시간의 기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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