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무 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나 있을 수도 있고

보들레르 <악의 꽃>... 마티스의 나디아 리디아 카티아.. 그리고 나

아무 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나 있을 수도 있고

인간은 결코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을 품고...     


허기와 포만 사이에 있는 것은 허기진 상태에 있을 때마다 더 불행하다

결핍은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동력이지만 포만감을 느낄수록.... 성장과는 멀어진다.

허기진 포만일까. 포만의 허기일까.   

2월의 어정쩡함을 견딜 수 없다.

결핍인지 포만인지... 그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인지.

바람에 3월의 냄새가 조금씩 묻어오고 있다.     

마티스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야수파 마티스와 악의 꽃..... 꽤 어울리는 조합이다.       

 

"어느 한 아침에 우리는 떠난다.

 머릿속은 불길로 가득하고

 마음속은 쓰라린 원한과 욕망으로 가득 차서

 파도의 리듬을 따라

 바다의 유한 위에

 우리의 무한을 싣고 흔들리면서 “ < 여행 > 일부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 여행 (LE VOYAGE)     


어느 아침 우리는 떠난다. 머릿속은 활활 타오르고

마음은 원한과 서글픈 욕망으로 가득한 채

그리고 우리는 간다. 물결치는 파도의 선을 따라

유연한 바다 위의 무한한 우리 마음을 흔들며

...

그들의 욕망은 떠도는 구름의 형상을 하고

대포를 꿈꾸는 신병처럼 그들은 꿈꾼다

어떤 인간도 일찍이 그 이름 알지 못했던

저 미지의 변덕스러운 끝없는 쾌락을

.....

얄궂은 운명, 목표는 수시로 바뀌어

아무 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나 있을 수도 있고

인간은 결코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을 품고

휴식을 찾아 미친놈처럼 줄곧 달린다

... 

우리는 보았다. 별들과 물결을 또 모래밭을 보았다.

 뜻밖의 재난과 사고에도 무수히 부딪혔으되

우리는 여기서처럼 종종 권태로웠다

....

아무리 호사스러운 도시도, 아무리 웅대한 풍경도

우연이 구름과 함께 만들어내는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지 못했고

욕망은 쉴 새 없이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을?

....

오 어린애 같은 사람들이여!

가장 중요한 것을 잊기 전에 말하지만

우리는 어디서나 보았다. 일부러 찾아다닌 것도 아니건만

숙명의 사다리 위에서 아래까지 가득한

불멸의 죄악의 지겨운 풍경을..

....

이것이 여행에서 얻어낸 씁쓸한 깨우침

단조롭고 작은 이 세계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우리 모습을 비춰 보인다

권태의 사막 속의 공포의 오아시스를

....

미지의 바닥에 잠기리라.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정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격은 스스로 옥죄는 일일 것이다.

돌아보면 어릴 적부터 완벽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것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열등감 때문에 더 완벽함을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 완벽에 대한 추구로 인해 항상 허기졌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간이 되었을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되었을 리 없다.

어쩌면 완벽에서 더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작용한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생각과 완벽은 분명 다른 개념이지만... 아주 조금의 실수에도 예민한 나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한다.     

            

방전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간이다.

다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 할까.

어떤 동력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 조르바를 읽고 싶어 진다.

     


책상 앞에 온통 마티스의 작품들이다. <사랑에 빠진 심장> 그리고 < 나디아 >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 부드러운 머릿결의 나디아 Nadia with Smooth Hair, by Henri Matisse 1948     

     

나디아(Nadia Sednaoui) 인도계의 피가 흐르는 모델로 마티스는 1948년 여름 동안 집중적으로 나디아의 드로잉 작업을 했다고 한다.     

주로 나디아와 함께 세트로 제시되는 그림의 모델은 카티아(Katia)라고 한다

보기엔 남자처럼 보이지만..          

나디아와 카티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처럼 보이는 두 사람

간결한 드로잉 속에 나디아와 카티아의 전부를 담아놓았다.

담백한 선으로 그려진 그림.     

나디아를 리디아와 헷갈려하는 사람도 많다. 

리디아는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 Lydia Delectorskaya로 러시아계 모델로 마티스의 마지막 모델이었고 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Lydia, by Henri Matisse (1944)     

화가와 모델로 마티스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리디아는 마티스가 70세에 아내와 헤어지고 십이지장암 수술까지 받은 후 제대로 거동조차 하기 힘들어질 때 늘 곁에 있었고 컷아웃 시리즈 제작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마티스도 나디아도 리디아도 카티아도 세상에 없다.

세상에 부재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책상 앞에 놓아두어서일까?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은...   

아니면 포만감도 허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서일까.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무언가를 해도 시간은 흐른다.      


"아무 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나 있을 수도 있고

인간은 결코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을 품고... "         

결코 지질 출 모르는 희망을 품어서가 아니다. 

아무 데도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

절망과 희망사이 결핍과 충만사이.... 허기진 포만과 포식된 허기 사이에

나의 2월이 가고 있다.


나무에 대한 책을 도서관에서 몽땅 빌려왔다.

아마도 두 번째 책을 쓴다면 ‘나무’에 대한 것이 아닐까...

가장 닮고 싶은 생명체이면서 가장 닮기 어려운 생명체.....

‘나무’를 쓸 준비가 안되었다. 아직... 나는 '나무'를 닮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디아인지 리디아인지. 카티아인지... 이름조차 비슷비슷한 마티스의 모델들처럼.......... 나의 2월은 뒤엉켜있다.

1월의 다짐은 희석되고 무언가를 하고는 있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혹은 무언가를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하고 있는 척하는 느낌...     

나디아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앙리 마티스 달력의 2월은 나디아의 초상이다. 2월 같은 그녀인가?...../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지음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시간과 더불어 공간도 흐른다.... 그리고 포만과 허기 사이에 끼어있는 나도 흐른다.

흐름의 끝을 알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무명작가를 위한 다섯 개의 질문/안규철의 작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