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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의 매혹.. 장 그르니에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의 뜨거운 마음을 부러워하던... 

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얻는 계시란 매우 드문 것이어서 기껏해야 한 두 번 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시는 행운처럼 삶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살려는 열정, 알려는 열정에 북받치는 사람들에게... 계시를 주는 책...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읽고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 카뮈


장 그르니에 『섬』을 처음으로 읽던 해 20대였다. 치기 어린 젊음. 나는 카뮈의 흉내를 내고 싶었다.

비가 내리던 날... 서점에서 이 책을 읽다가  아무도 없는 곳, 오직 나만 있는 곳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읽고 싶었던 책... 카뮈가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처럼...


여전히 후각에 남아있는 비 냄새와... 책 위로 몇 방울 떨어지던 비의 눈물 같은 것과.... 

책이 젖을까 두려워하던 그 마음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겪게 될 전율이 두렵던 그때..  나는 충분히 젊었다....

여전히   장 그르니에 『섬』은 내 책상 앞에 놓여있다. 그 시절 나를 그토록 붙잡던 공(空)의 매혹..

그 첫 구절에 가슴 설레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공(空)의 매혹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 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도 깊숙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수의(壽衣) 밀어붙이며 나자렛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놀란다. 그런데 사실 그 수의란 다름 아닌 어린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저마다의 일생에... 일생의 동이 터 오르는 여명기,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 같은 것. 그 순간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다고 장 그르니에는 첫 문장에 적고 있다.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라고.. 한 인간의 존재가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저 자신 속에 너무도 깊숙이 파묻혀있기에 점진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의 한 마디에 위로받았던 시간이었다. 자신 속에 너무 깊숙이 파묻힌 자신을 찾아내는 일... 



  나의 경우는 바로 그러했다. 최초의 기억은 여러 해에 걸친 시간 속에 흩어진 꿈처럼 어렴풋한 기억이다. 나에게 새삼스럽게 이 세계의 헛됨을 말해 줄 필요는 없다. 나는 그보다 더한 것을, 세계의 비어있음을 체험했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몇 살이었을까? 예닐곱 살 쯤이었을 것이다. 어느 한 그루의 보리수 그늘 밑에 가만히 누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눈을 던지고 있다가 나는 문득 그 하늘이 기우 뚱하더니 허공 속으로 송두리째 삼켜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내가 처음 느낀 무(無)의 인상이었다. 그 인상은 어떤 풍부하고 충만한 생존의 인상에 바로 잇달아 느끼게 된 것이었기에 더욱 생생했다. 그 후 나는 왜 한 가지는 다른 한 가지에 잇달아 나타나는 것인가를 알려고 애를 써왔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은 파멸이 아니라 공백이. 입을 딱 벌린 그 구멍 속으로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삼켜져 버릴 판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현실성이란 실로 보잘것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을 되씹어보기 시작했다. ‘그날부터’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내부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것이  차례차례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나는 확신하고 있는 터이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어느 날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는 그냥 살아간다기보다 왜 살아가는가에 의문을 품게 마련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파멸이 아니라 입을 딱 벌린 공백... 송두리째 무언가를 집어삼켜버릴 듯한 공백.. 사물의 현실성을 의심하게 만다는 그 무한한 공백에 장 그리니에는 사로잡힌다.'그날부터'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고... 그날이란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들은 내부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날... 어떤 공백, 무의 인상에 사로잡힌  충격. 



  바다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부지런히 바다와 접촉하며 살았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는 만사가 헛된 꿈과도  같은 것이란 생각이 굳어졌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다, 항상 움직이는 바다 말이다.... 얼마나 엄청난 공허인가! 바위, 갯벌, 물... 날마다 모든 것이 전부 다시 따져보아야 할 곳으로 변하는 곳이니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어떤 나룻배를 타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곤 하는 것이다. 방향을 가늠할 표적 하나 없었다. 길을 잃은 채, 어쩔 도리도 없이 길을 잃은 채, 보이는 별 하나 없었다

...... 날이면 날마다 그 음울한 벌판으로 쏘다녔다. 나는 물결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물결은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하면서, 마치 든든한 밧줄로 바다 깊숙이 비끄러매놓은 부표처럼 끝내는 나를 제자리에 그대로 남겨 놓는 것이었다. 그 같은 무감각 상태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 쾌감이 전혀 없지도 않은 채 그냥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결국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무엇이나 다 어디엔가로 인도하기 마련이다


날마다 바다는 움직이고 날마다 엄청난 공허를 만들어낸다. 밀물과 썰물. 모든 것이 변해가는 그곳에 오직 자신만 부표처럼 그 자리에 매어있는 것 같은 무감각.. 쾌감이라 부르기엔 어색한 쾌감을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쩔 때 부표처럼 매어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르니에처럼... 모든 것은 변해가고 흩어지고 모든 것은 움직이는데...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심한 부표처럼. 어떤 밀물에도 어떤 썰물에도 나를 놓아주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이다. 바싹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사치스럽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히 바로 그 삶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절대로  그런 것 따위는 느끼지 않고 지냈으면 하는 감정들 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것이 저것보다 더 낫다고 여겨지는 때도 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무심의 순간에서 선택의 순간으로 넘어가게 된다. 나는 유희에 말려들고 덧없는 것 속에서 거기에 있지도 않은 절대를 찾는다, 입을 다물고 무시해버리지 못하고 마음속에 소용돌이를 계속 불러일으키고 있다, 상표가 서로 다른 두 자루의 펜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은 실로 참혹하다, 가장 좋은 것이 반드시 가장 비싼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가장 못한 것이 널리 쓰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못한 것도 없다. 이때에 좋은 것이 있고 저 때에 좋은 것이 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 일단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 이 세상 속에 일단 얼굴을 내밀기로 작정만 하면, 우리는 더 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악마의 유혹에 휩싸인다, 목숨이 붙어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걸 안 고르는 거지? 하고 귀에다 속살거리는 악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곧 뜀박질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그러나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사치스럽고 큰 그림으로 보면 비극적이라고....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생각이 난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가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행복은 비슷비슷하게 찾아오고 불행의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이라고. 한 문장에 담긴 삶의 의미는 크다.

무심의 순간에서 선택의 순간으로 넘어갈 때 우리는 늘 고민하게 된다. 끝없는 선택.. 아주 사소한 것부터 인생을 뒤바꿀 중요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못한 것도 없고 다만 이때에 좋은 것이 있고 저 때에 좋은 것이 있을 뿐이라고 그르니에는 말한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내가 원할 때 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것은 때로 나의 선택을 흔들리게 한다.



  공(空)의 매혹이 뜀박질로 인도하게 되고, 우리가 한 발을 딛고 뛰듯 껑충껑충 이것저것에로 뛰어가게 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섞인다. - 앞으로 다가가면서도(동시에 도망쳐)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그 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보상을 받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니,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내 어린 시절, 반듯이 누워서 그리도 오래도록 나뭇가지 사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하늘, 그리고 어느 날 싹 지워져 버린 그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공포심과 매혹이 한데 뒤섞인 공(空)의 매혹..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 것은.. 그 절묘한 순간에 이르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었을 뿐이라고... 어린 시절 물끄러미 바라보던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저마다의 인생이 동터오는 시기... 앞으로 끝없이 전진만 할 수 없었다. 전진과 후퇴의 반복...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도는 끝없이 앞으로 오고 있는 것처럼...

삶의 전진과 후퇴의 무한 반복은 결국 더디지만 전진하기 위함이다.

전진을 위한 후퇴의 순간이 두려운 시간이다. 뒤로 물러나야 하는 때... 삶의 굽이굽이에서 그 시간을 견디어내는 일... 그 시간을 잘 참아내는 일...  아마도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그칠 사이 없는 움직임의 보상을 받는 순간이 아닐까.... 4월이 간다. 전진을 위해서든 후퇴를 위해서든...../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푸른 잉크빛 바다가 이끄는 곳.

저마다의 지중해로 이끌린다.


밀려옴과 밀려감

있음과 없음

고요와 소란

희망과 좌절이 무한 반복 되는

저마다의 바다로...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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