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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보듯 새하얀 종이를 보고 모니터의 화면을 본다

말과 말 사이, 글과 글 사이... 씀이라는 행위

면지..... 종이를 마주하는 법          

모니터에 커서가 깜박인다. 무언가를 쓰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스님들은 잡념을 막기 위해 벽을 바라보는 수행, 면벽 수행을 한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벽, 그 벽을 바라본다. 내게는 하얀 모니터가, 새하얀 종이가 바로 벽이다. 그 벽은 끝없이 나를 몰고 간다.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 같은 것으로. 눈앞에 보이는 벽은 비움의  벽이 아니라 채움의 벽으로 작동한다.

글을 쓰는 행위가 어느 순간 재미와 즐거움, 자기 배설의 단계를 지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일로 변해가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를 열어가는 대신 몸을 칭칭 감아 고치 안에 나를 가둔다. 열어서 보여줄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자괴감 같은 것이 들어서일까. 

세상에 잉태되는 수많은 책들, 글들... 누군가가 종이를 응시한 혹은 새하얀 모니터를 응시한 결과다. 면벽 수행처럼 고독한 수련의 과정을 거쳐, 내면의 것들을 표출하기도 하고 짓누르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무언가를 완성한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하는 것은 단지 타자기 앞에 앉아 피 흘리는 것이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에 불과하며 글을 쓰는 행위는 단지 타자기 앞에 앉아 피를 흘리는 행위라고 말한다.

벽과 같은 종이, 벽과 같은 모니터...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나는 펜을 움켜쥐어야 하고 모니터에 무언가를 입력하기 위해선 양손이 분주히 자판 위를 달려야 한다.

멈추지 않는... 기묘한 면벽 행위다.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참선의 자세로 벽을 바라본다. 스님이 바라보는 벽은 세상과 돌아앉은, 세상과의 단절을 상징하지만 벽을 바라보는 스님의 눈에는 세상이 보일 것이다. 새하얀  벽이 세상의 모든 것들로 뒤엉킨 깜지처럼 보이는 순간... 

벽 면에 욕망이 넘실거리면 욕망을 죽이고 벽 면에 추함이 넘실거리면 추함을 죽인다.

분노를 죽이고..... 고통을 죽이고... 그 수많은 것들을 새하얀 벽면에 끄집어내어 수없이 죽인다.... 

그리고 비로소 비워가는 것들. 비로소 새하얀 종이로 남을 때.  더 이상 세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벽이 무언가의 투영이 아닌 벽으로 보일 때.... 벽이 오직 ‘벽’으로만 보일 때

비로소 스님의 수행은 완성되는 것이리라.  

   


벽을 보듯 새하얀 종이를 본다. 새하얀 모니터 화면을 본다. 

벽이 말을 한다. 내 안의 것들, 내 안의 내가 너무 많다고...

아직 죽이지 못하는 것들을.... 감히 내려놓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안아 들고 보듬고 마는 것들을 본다. 고치 속에 가두어둔 것들을....     

글쓰기가 자기 배설이었던 때... 어쩌면 통쾌했었다.

지금은 글쓰기로 나를 배설하지 못한다. 어떤 압박감... 시간이, 세월이 밀고 가는 풍경 속에  쫓겨가며     

흰 종이 위에 그것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만하던 것들은 사라지고.... 흰 종이를, 흰 모니터를 응시하는 나는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이토록 푸른 날. 계절은 어김없이 저마다의 흰 종이에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풀아놓는데..... 면벽하듯.... 종이를 바라보는 나는 고독하다.

새하얀 종이, 새하얀 모니터의 커서..... 다음 명령어를 기다리는 충직한 커서....

행과 연을 바꾸어 주기를... 자음과 모음을 이어 주기를.... 어설픈 단어와 단어를 어설픈 문장으로 엮어주기를 바라는.... 그 무심하고 단조로운 커서의 눈빛에, 그 눈빛에 굴복하며 나는 쓴다... 쓰고 있다.

이렇게 쓰는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일까 생각하면서....

여전히 피 흘리지 못한 채... 언어유희를 반복하는 나는 쓰고 있다.     

하얀 종이, 하얀 모니터에 인생의 어느 한순간...

손이 자판 위를 달리던 그날의 풍경을 쓴다.

세상은 자기 만의 속도로 돌고... 나는 나만의 속도로 돈다....

이천이십삼 번째의 5월이라고.... 쓴다.      


   확실한 것


지금 이 램프가 실제 있는 것이고

이 하얀 불빛이 실제 있는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손이 실제 있다면, 

이 쓴 것을 바라보는 눈은 진짜 있는 것인가?


말과 말 사이

내가 하는 말은 사라진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뿐

두 괄호 사이에서

         -옥타비오 빠스-


말과 말 사이, 글과 글 사이.... 나와 나 사이.. 괄호와 괄호사이...

실재하는 것. 확실한 것은 충직한 커서의 간절한 눈빛을 쫓는 행위뿐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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