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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모든 것을 태우지못하더라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영화 촬영은 2018년 10월 15일 시작되어 38일 만에 종료되었으며  촬영지는 브르타뉴의 생피에르키베롱(Saint-Pierre-Quiberon)지역과 센에마른주의 라샤펠고티에(La Chapelle-Gauthier)에 위치한 성이 주 무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화가 엘렌 델메르(Hélène Delmaire)가 그렸다고 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2019년 작품으로 제72회 칸 영화제(2019)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이자 각본상·퀴어종려상 수상작이다.        

  


영화의 시작은 젊은 화가 마리안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 수업을 하는 장면이다.

학생 한 명이 마리안의 그림 한 점을 꺼내 놓고 작품의 제목을 묻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대답한다.

마리안의 그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주인공은 몇 년 전 브르타뉴의 외딴섬의 고택에 머무르면서 그린 엘로이즈라는 귀족여자다.

수녀원에 있었던 엘로이즈는 언니의 죽음으로 수녀원에서 나와 밀라노 귀족과 정혼한 상태다. 정혼자의 집에 장차 안주인이 될 여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미리 보내야 하는데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엘로이즈 때문에 초상화 그리는 일은 쉽지 않다. 결국 화가 마리안느는 산책친구가 되어 그녀의 모든 모습을 관찰하면서 초상화를 그려낸다. 옆모습과 앞모습과 뒷모습... 손을 가지런히 모은 모습... 경직된 표정과 찡그린 표정... 그 낱낱의 것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완전체로 마무리하는 작업은 모델을 앞에 앉혀두고 그리는 작업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 걸린다.


그림은 완성되지만 마리안느는 그녀를 산책친구인척 속이고 접근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엘로이즈에게 고백한다. 자신의 초상화 앞에선 엘로이즈는 ‘존재감’과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는 초상화 속 여자는 자기가 결코 닮지 않았다고 혹평한다.

화가로서의 자존심... 그림에 대한 엘로이즈의 정확한 지적에 마리안느는 완성된 초상화의 얼굴을 문질러 버린다. 마리안느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던 엘로이즈의 엄마는 자신을 우롱하는 화가라고 분노하고 당장 떠나라고 하는데 뜻밖에 엘로이즈가 모델이 되어 기꺼이 포즈를 취하겠다고 말한다. 부인은 5일의 시간을 줄 테니 그동안 완성해야 한다는 당부 같은 명령을 하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 영화의 핵심은 사실상 그 저택의 안주인이 떠난 5일간에 집중되어 있다. 5일 동안 임신을 원하지 않았지만 임신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하녀 소피, 귀족여자 엘로이즈, 화가 마리안느는 자매처럼 생활한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소피를 위해 들판을 뒤져 낙태에 이용되는 풀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소피가 민간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는 불법 낙태시술을 받으러 갈 때 동행하기도 한다.

수직으로 이어지는 신분제의 틀을 깨고 수평으로 이어지는 들길을 걸어 세 여인이 걸어간다. 자매처럼

누군가의 무엇이기 전에 온전히 평등한 여인 자체로...

몸이 안 좋은 하녀 소피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수를 놓고 마리안느는 장작불을 피우고 엘로이즈는 야채를 다듬어 직접 음식을  만든다. 귀족 부인이 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엘로이즈는 깊은 밤 세 명이 카드놀이를 할 때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촛불아래서 소피와 마리안느를 위해 앨로이즈는 책을 읽어준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다.          


오르페우스(Orpheus)는  아버지 아폴론에게서는 리라 연주 재능을, 어머니 칼리오페에게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았다. 그의 리라 연주와 노래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숲의 요정 에우리디케(Eurydike)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데 결혼식 날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Hymenaios)가 들고 있던 축복의 횃불이 꺼져 피어오른 연기 때문에 하객들이 기침에 시달리는 불길한 징조가 일어난다. 그 불길한 징조처럼 에우리디케는 들판으로 산책 나갔다가 독사에 발을 물려 즉사하고 만다.

비탄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저승 세계로 가서 아내를 되찾아오기로 결심한다. 저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뱃사공 카론과 삼두견 케르베로스를 음악의 힘으로 제압하고 저승의 주인인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앞에 선다.     

“언젠가는 누구든 올 수밖에 없는 저승 세계를 다스리는 신들이여! 저의 애달픈 사연을 들어주소서. 제가 이곳에 온 것은 타르타로스의 비밀을 캐기 위해서도 아니요,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와 힘을 겨루기 위해서도 아니랍니다. 저는 오직 독사에게 발이 물려 행복의 정점에서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랑하는 아내를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답니다. 사랑은 이승이건 저승이건 간에 모든 것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알고 있지요. 저승의 군주시여! 부디 에우리디케를 저에게 돌려주십시오. ”     

감동받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그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에우리디케를 뒤따라가게 할 텐데, 그녀가 저승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오르페우스가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어두운 저승길을 묵묵히 앞장서 걷던 오르페우스는 저승 세계를 벗어나기 직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애처로운 눈빛을 남기며 저승 세계로 다시 끌려 들어간다. 오르페우스가 사라져 가는 아내를 잡으려고 안타까이 팔을 내밀었으나 캄캄한 허공만 잡힐 따름이었다.     



 오르페우스가 마지막에 뒤를 돌아본 이유에 대해 세 여인의 토론이 시작된다.  소피는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오르페우스의 탓으로, 마리안느는 예술가인 오르페우스의 시적인 기억과 설렘 때문에, 엘로이즈는 오르페우수의 탓이 아닌 에우리디케의 탓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나와있지 않지만 에우리디케가 앞서 가는 오르페우스를 부르지 않았을까. 뒤돌아봐달라고..      

 마을 여인들의 캠프 파이어 모임에서 평민 여자들은 귀족 엘로이즈를 보고 그녀 곁에 모여든다. 동심원을 만들며 손과 손을 잡고... 노래를 불러주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엘로이즈의 긴 드레스에 불이 옮겨붙는다. 바로 이 장면이 마리안느에게 인상적으로 남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그려진 것이다.     


마리안느의 모델이었던 엘로이즈.. 마리안느는 당황스러울 때는 입술을 깨물고  화가 날 땐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엘로이즈의 사소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엘로이즈는 당신이 나를 관찰할 때 나 또한 당신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말하며 당신은 평점심을 잃으면 눈썹이 올라가고.. 당황할 땐 입으로 숨을 쉰다고...     

“사랑에 빠진 적이 있나요?”라고 묻는 엘로이즈의 말은 두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진짜 사랑의 감정을 느낀 두 사람이지만 초상화가 완성되면 그리고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돌아오면  사랑은 끝이난 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드디어 초상화가 완성되는 날... 생동감 넘치는 모습의 엘로이즈가 화폭에 담겨있다.

마리안느는 사랑에 대해 묻고.... 엘로이즈는 당신이 나를 조금이라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정혼을 거절이라도 하라는 거냐고 되묻는다. 마리안느는 화가다운 사랑을 하지만 엘로이즈는 그들의 사랑이 이미 정해진 틀을 부술 수 없음을 안다. 밀라노의 귀족과 결혼한다고 하여 그들의 사랑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엘로이즈의 마음의 표현이다.... 그녀의 책 28페이지에는 마리안느의 누드가 그려지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랑의 마지막 증표로 남는다. 


귀족 부인이 이탈리아에서 돌아오고 초상화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그에 상응한 돈을 지불하고... 마리안느는 마지막 인사를 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빠르게 달려 내려가는 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가 “뒤를 돌아보라”로 말한다. 마리안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읽고 나서 엘로이즈가 했던 말과 같은 결론이다.

   

그 후 마리안느는 미술 전시회애서 엘로이즈가 그려진 그림 작품을 본다.

딸과 손을 잡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엘로이즈, 한 손에는 책이 들려있고 28페이지라는 숫자가 선명히 적혀있다. 또 한 번은 음악회에서 비발디의 〈여름〉을 듣던 날 먼발치에서 감정에 복받친 모습의 엘로이즈를 본다     


멀리 있어도, 누군가의 아내로 산다 하여도 28페이지에 남긴 사랑의 기억처럼 그들의 사랑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임을.... 두 사람의 동성적인 사랑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평등하게 걷는 세 여인의 실루엣이다.

또한 사랑의 대가 혹은 고통을... 불법 낙태 시술을  받는 소피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소피는 자연낙태를 위해 별별 민간요법을 동원하지만 실패하고 불법 시술을 받는데 시술자의 낡은 침대 위.. 누워있는 그녀의 얼굴을 어린 아기가 만지며 웃고 있다. 소피의 몸에서는 생명이 빠져나가고.. 시술자의 집 어린아이는 울고 있는 소피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탄생과 소멸의 공존..

타오르는 영혼의 초상.... 검푸는 원피스의 끝에 불이 옮겨 붙는다. 그러나 그 불은 그 여인의 몸을 태우지 못한다. 그 여인의 치마폭부터 휘감고 올라오지만 타오르는 영혼의 일부를 보여줄 뿐... 그녀가 딛고 사는 현실을 그 불로 태울 수는 없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영혼의 불... 타오르는 영혼의 불은 여전히 건재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든 사랑인 것은 분명한 것처럼...

타오르는 영혼의 불로........ 세상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설령 모든 것을 태우지는 못하더라도./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 2022 아르코문학 나눔 우수 도서선정

사랑은 적혈구들의 즐거운 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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