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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브라운의 연필

52세 히틀러의 생일 선물....

에바 브라운의 연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경매에 나온 연필은 아돌프 히틀러(1889∼1945)와 오랜 기간 연인 관계였다가 동반 자살한 에바 브라운(1912∼1945)이 1941년 4월 20일 52세 생일을 맞은 히틀러에게 선물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필 끝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약자인 'AH'가, 측면에는 '1941년 4월 20일'이라는 날짜와 이름 '에바'가 새겨져 있는 이 연필의 낙찰 예상가는 5만∼8만 파운드(8천200만∼1억 3천만 원)라고 한다.


에바 브라운은 17세 때 나치 공식 사진사 하인리히 호프만의 조수로 일하면서 히틀러를 처음 만났고, 1930년대 초중반부터 히틀러와 연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히틀러는 연인 겔리 라우발이 권총 자살한 1931년 9월 이후 비로소 에바 브라운과 사귀게 된다. 히틀러가 선거 유세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자 상심한 브라운은 1932년 8월에 라우발처럼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이 사건으로 히틀러는 브라운을 적극적으로 챙기게 되었다고 한다.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정권을 잡으면서 브라운은 호프만과 함께 나치 공식 사진사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위신을 위해 브라운을 어떤 공식 행사에도 초대하지 않았고 이에 절망한 브라운은 1935년 5월 수면제를 과다 복용으로 두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당시 에바 브라운의  마음이 담긴 일기의 일부다.  

나는 단 한 가지 소원뿐이다. 심하게 병이 나서 적어도 8일 동안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면 싶다. 어째서 내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날까, 어째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견디어내야만 하는 걸까? 차라리 그를 몰랐더라면. 나는 절망상태다. 다시 수면제를 산다. 그러면 비몽사몽에 빠져서 그렇게 많은 생각을 안 하게 되겠지. 어째서 악마는 나를 데려가지 않는지. 악마 곁에 있는 것이 여기 있는 것보다 낫겠다. 세 시간 동안이나 칼튼 앞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온드라에게 꽃을 사주고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꼴을 보아야만 했다. 그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만 나를 필요로 한다. 다른 것은 가능하지 않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면 바로 이런 순간을 뜻하는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지키지 않은 약속들과 꼭 같다. 어째서 그는 나를 이토록 괴롭히면서 곧장 끝내지 않는 걸까?                  

히틀러는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연인 브라운에게 물질적으로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고 브라운은 전시 상황에서도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다. 1942년 전쟁이 점차 독일에 불리해지기 시작하고 1943년에는 괴벨스에 의해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모든 사치품의 생산이 금지되었지만 에바 브라운은 예외였다.      

베를린이 소련군에 의해 함락 위기에 놓인 1945년 4월 초순에 브라운은 히틀러가 있는 베를린의 퓌러붕커로 들어와 함께 지냈다. 심지어 벙커에서도 뮌헨과 베르크호프에서처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포로로 잡혀 복수와 조롱거리가 되느니 자살을 결심한 히틀러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따라준 브라운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식을 올린다,

1945년.4월 30일 낮 1시가 좀 넘은 뒤 히틀러와 브라운은 퓌러붕커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동반 자살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33세였다. 오후 3시 반쯤 거실에서 나는 폭음 소리를 듣고 히틀러의 집사 하인츠 링에와 SS 부관이었던 오토 귄셰가 문을 열고 들어가 둘의 죽음을 확인했다. 이들의 시체는 벙커의 환풍구 계단을 통해 바깥으로 운반되었고 퓌러 관저 정원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서 휘발유로 화장 처리되었다고 한다. 히틀러가 죽기 전에 자신과 관련된 기밀문서를 모두 파기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브라운과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벙커 생존자들의 증언들이 나오면서 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연합군 군정 당국과 독일 정부가 브라운의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브라운이 사적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공론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히틀러의 연인으로서 에바 브라운이 궁금한 것이 아니다.

17세의 그녀가 한눈에 반해 동경의 대상이었던 아돌프 히틀러, 

그녀의 나이 33세에서야 결혼 서류에 공식적으로 사인하고 정부가 아닌 합법적 부부가 되었지만 죽음의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당시 독일의 최고 권력자인 한 남자를 사랑했고 누릴 수 있는 사치를 전쟁 중에도 누렸고 마침내 그를 합법적인 테두리로 소유할 수 있었다.

에바 브라운의 삶보다 더 궁금한 것은 히틀러의 52세 생일 선물로 '연필'을 선물했다는 점이다.

히틀러의 이니셜을 적은 연필을 선물한 여자. 이니셜이 적힌 연필이라니... 아름다운 선물이다.


세상의 모든 필기구 중 연필만큼 인간적인 사물이 또 있을까?

흑연을 감싼 육각형 혹은 동그란 혹은 세모난 나무... 손가락으로 움켜쥐는 연필의 촉감, 사각거리는 소리... 

색깔과 향기와 촉감으로 느껴지는... 연필의 감각.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연필은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 연필심과 나무와... 그리고 지우개가 붙어있는...


샤프가 나오기 전, 아침에 학교 가기 전 하는 일 중 하나가 연필을 뾰족하게 깎아두는 일이었다

잘 깎은 연필에  연필캡을 씌우고 필통 속에 가지런히 넣어두면 그것만으로 든든하던 시절.

지금도 연필로 무언가를 쓸 때면 볼펜이나 만년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연필이 주는 마법 같은 것일까. 검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무언가를 그려내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 가는 순간 나는 원고지에 또박또박 글씨를 쓰던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간다.


파울로 코엘료는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연필을 닮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내용이 나온다


첫 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 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 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 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 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연필을 이끄는 손을 기억하고, 쓰던 걸 멈춰야 함을 기억하고, 실수도 지울 수 있음을 기억하고, 연필심에 집중하고, 연필이 남기는 흔적을 잊지 말라는 코엘료의 당부다. 어쩌면 우리들이 삶에서 가져야 할 삶의 자세인지도 모른다.


에바 브라운은 기록상으로는 사치스럽고 낭비벽이 심한 여자로 알려져 있지만...

최고 권력자인 히틀러의 생일 선물로 '연필'을 선물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를 다르게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본질 사이.

'에바 브라운'이라고 이름 붙은 한 여인의 삶이 서류에 기록된 것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류 밖의 여자. 기록 밖의 여자.... 문서로 남긴 그 모든 테두리를 떼어낸 에바 브라운의 실체가 궁금하다.

연인에게 연필을 선물하는 여자라니.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본질은 항상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본질이 아니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조차도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왜곡된다

에바 브라운의 연필.... 나는 그 한 자루의 연필에서 에바 브라운의 본질을 생각한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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