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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의 빨간 양산 하나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작품 <오르막길>

햇살의 질감이 드러난다. 그림 속 햇살은 주로 나무와 길 위에 내려앉는다. 

햇살을 붙잡아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흔히 클로드 모네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키유보트의 햇살은 이 세상을 다시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한다.     

연로록과 진초록이 뒤섞인 길, 아마도 오후 무렵으로 추정되는 산책길... 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두 사람이 걷고 있다. 빨간 우산을 쓴 여자는 카유보트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이고 모자를 쓴 남자는 카유보트 자신이라고 하는데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는 뒷모습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모든 것,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상한다. 두 사람의 뒷모습은 여유롭고 안정적이고 품위가 있다.   


작품의 제목이 ‘산책’이 아니라 ‘오르막길’이다.

오르막길을 걷는 남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아마도 그 당시 유행이었을 긴 남색 레이스 치마를 입었고 해를 가리기 위해 빨간 양산을 썼다. 모자를 쓴 남자와 여자는 어깨를 기대고 걷지 않는다.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여자의 양산을 남자가 받쳐주는 것도 아닌 독립적이고 우아하고 산뜻한 오르막길 풍경이다. 친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깔끔한 거리감이 마음에 든다. 두 사람 사이의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거리를 느끼게 한다. 의지하지도 보호하지도 않는 적당한 관계. 그의 오랜 가정부이자 연인이었던 여인이지만

종속되지 않고 충분히 존중받는 듯한 느낌이 좋다.     

오르막길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오르막의 초입일지도 모른다

구스티프 카유보트는 오르막의 초입에 임하는 자세.. 인생의 오르막길에서도 평지에서와 같은 ‘늘 같음’을 잃지 말라는 의미일까?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1840년 군수사업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서 부유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12년간 가정부를 했던 여인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었다고 전해진다.     

색상과 질감으로 승부를 걸지 않고 대담한 원근 화법으로 공간을 중시하는 그림을 그렸고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남자를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었기에 가난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후원자적 역할을 해주어서일까? 가난한 화가의 그림에서 느끼지는 고통의 울부짖음은 없다.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그림에 강요된 희망이나 기쁨, 낯선 부유함의 정서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때론 무언가를 어딘가를 응시하는 고독한 남자의 등에서 더 많은 슬픔과 더  많은 고통과 더 많은 사연들을 읽어낼 때가 있다.  <오르막길>이라는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여인의 빨강 양산, 초록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여인의 빨강 양산이, 

쏟아지는 햇살의 빛깔과 질감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18세기 그림. 오르막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10월의 첫날, 그림 속 풍경이 꼭 오늘 같은 날씨처럼 여겨진다. 한 때 나를 들뜨게 했던 내 인생의 빨강 양산들은 어디로 갔을까? 빨강 양산을 쓰고 무성한 진초록 길을 오른다.  두렵지 않게, 힘들지 않게...


"인간의 삶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날들은 점에 불과하고 우리의 실재는 유동적이며, 우리의 인지 능력은 형편없고 우리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다 썩게 될 것이며, 우리의 혼은 늘 불안정하고 우라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고, 우리의 명성은 위태롭다. 요컨대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은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고 호흡에 속한 모든 것은 꿈이고 신기루다. 인생은 전쟁이고 낯선 땅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호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가? 오직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철학이다."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에서


아우렐리우스는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망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호위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연코, 주저 없이 '철학'이라고 하였지만

오늘의 나는 끝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빨간 양산'이라고 대답하고 싶어 진다. 


달력의 한 장을 새로 넘겼다.  그러므로 10월이 시작되었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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