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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있는 새와 날고 싶은 자작나무

 「백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은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너머는 평안도(平安道)땅도 보인다는 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백석의 시. <백화>를 읽다 보면 눈 내린 자작나무 숲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어디선가 눈 길에서 마주칠 것 같은...     

자작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얀 수피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수피를 벗겨 그곳에 글을 쓰기도 해서 ‘글을 쓰는 나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자작나무란 이름은 나무를 땔감으로 쓸 때 불에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하는 것 같아서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데 뜨거운 불 속에서 자작거리며 타는 자작나무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 종이 편지지를 사서 편지를  부치던 시절.  좋아하는 편지지 브랜드가 ‘날고 싶은 자작나무’였다. (거기에서 내 브런치 활동명 : 날고 싶은 자작나무 려원을 따왔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 숙명이지만...

그러하기에 얼마나 걷고 달리고 날고 싶을까     

새들이 내려앉은 나뭇가지. 새의 몸짓에 나무들의 가지가 탄성을 받는다.

포르르 날아가 또 다른 나무로 옮겨가는 새들을 바라보는 자작나무는 날고 싶었으리라. 나무는 어쩌면 뿌리를 뽑고 잎사귀들을 날개로 만들어 하늘을 날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꿈. 상상에 불가하다.

     

거실 한가운데 거대한 자작나무 한그루가 있다. 백골의 몸에 조악한 플라스틱 초록 잎사귀가 붙어있다. 흔들리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낙엽이 되지도 않는다.  일 년 열두 달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나무다. 생로병사를 겪지 않아도 되는 나무. 

나무를 가공하는 제작자는 나무의 기본, 바탕인 몸통은 진짜 자작나무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다행이다.

강원도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을 상상한다. 눈 내리는 시베리아 벌판의 거대한 자작나무 숲을  떠올린다.  

 나무에 연결된 작은 가지들... 그 가지 끝에 있는 초록 잎들..

아파트라는 공간, 나는 가능하다면 내가 사는 작은 공간에라도 숲을 만들고 싶었다.

거창한 숲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거실 한가운데 거대한 나무 한 그루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오직 나무면 되었다.      


날기 연습을 하는 앵무새가 거실을 한 바퀴 돈다. 다시 새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앵무새의 기착지는 늘 자작나무다. 여린 나뭇가지가 무게감이 있는 대본청 앵무새가 내려앉는 바람에 뚝 부러진다.

높이 올라간 새는 나뭇 가지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초록 몸통의 앵무새가 초록 잎사귀 사이에 숨어있다.

나뭇가지를 움켜쥔 발을 떼내려고 할 때마다 새는 더 깊이 더 높이 더 단단하게 나뭇가지를 움켜잡는다     

새에게도 나무가 위로가 되었을까.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나는 그 새의 출생을 알지 못한다.

키우기 어려워 분양한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데려온 아기 새.

온몸이 초록색에 오렌지와 레드가 뒤섞인 단단한 부리를 지녔다.     

단 한 번도 진짜 숲을 알지 못하는 새가 거실을 하늘 삼아 날개를 쭉 펴고 난다.

그리고 늘 자작나무 위에 착륙한다.

처음에는 새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서인가 싶었는데 다시 보니 새는 일부러 새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새에게도 숲의 기억이 각인되어 있을까.

새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날갯짓을 하던 그 깊고 짙고 푸른 열대 우림의 숲의 기억이 유전자 중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자작나무의 새하얀 몸통이 새를 반긴다. 초록 플라스틱 잎사귀가 새를 부른다.

"그래 어서 와     

숲 속의 새들이 내게 날와와 털을 고르곤 했지...

마음껏 쉬렴..."     

박제가 된 나무가 살아 움직이는 어린 새의 날갯질을 응원한다

새가 움켜쥔 가지가 뚝뚝 부러지고 새가 움직일 때마다 가짜 잎사귀가 떨어진다.

     

본질만 남는다. 한 때 살아있었던 나무의 새하얀 수피와 지금 여전히 살아있는 진초록 앵무새...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의 자작나무가 열대우림의 앵무새 날개를 부러워한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자작나무 숲이다

......

자작나무 숲이다. 자작나무 숲이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나무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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